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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원영연(58)-하

기자명 법보

한겨울 추위가 뼛속에 사무쳐
향기로운 꽃향기 내고자 정진
번뇌는 줄고 맑은 기운 차올라
중풍 통증도 점차 완연히 줄어

원영연(58)

결국 다시 곡성 성륜사로 돌아왔다. 이상했다. 사실 공양주가 없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공양간에 공양주가 있었다. 아내 당부대로 “아는 떡집에 떡을 맞춰 달라”고 공양주에게 부탁드렸다. 공양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은 걸린다. 내일은 안 될 텐데….” 그래도 일단 전화해보라 했다. 웬일인지 떡집에서는 바로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집중수행에 참여하면서 통증으로 도망(?)갔다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다시 성륜사로 왔고, 5일째가 되던 날도 통증으로 탈출(?)을 감행했다가 아내의 경책을 듣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떡 공양을 하게 되니 보이지 않는 존재가 계속 나를 수행으로 소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날, 법회가 있기 전 오전수행에 임했다. 여전히 산채로 지옥에 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시작됐다. 문득 카페에서 읽었던 “한겨울 추위가 뼛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매화꽃이 어찌 향기로울 수 있느냐(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는 황벽 스님의 경책이 떠올랐다. 추위가 이 고통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시간을 채우자고 맘먹고 견뎠다.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렸다. 그 소리는 작두날이 제 다리를 절단하는 소리로 들렸다. 정수리에 뜨거운 땀이 솟아나고 회음혈 쪽에서 핸드볼 공만한 덩어리가 아래 배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가부좌를 풀었다. 

다리를 풀자마자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법우 한 분이 잠을 못 잤을 것이니 가서 잠을 자라며 안내해주신 곳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풍 맞은 오른쪽 팔다리에 첫날 느꼈던 예리한 칼날이 파고드는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잠에서 깼고, 회향까지 주차장에서 서성거려야만 했다. 여하튼 ‘곡성은 곡소리 나는 곳’ 이렇게 각인됐다. 

사실 난 “마음을 따르면 악마가 되고 성품의 고요함을 따르면 성인이 된다”는 말씀에도 너무 고통스러워 마음을 따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수행을 했는지 명확해졌다. 

15년 전 안구 중풍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묘한 인연법에 의한 가피로 병원 치료 없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신체의 오른쪽 반쪽은 중풍 후유증으로 감각이 나무토막 같은 상태로 지내왔다. 

불칠·선칠 집중수행 회향 뒤 오른쪽 서혜부에서 복숭아뼈에 이르기까지 칼날이 들어와 뼈를 찢는 듯한 고통은 결가부좌를 해도 나타나지 않게 됐다. 보통 사람들은 결가부좌 시 하체부분에 통증이 있겠지만 난 오른쪽 팔과 어깨 특히 어깨관절의 통증이 상상을 초월했고, 하체는 하체대로 통증이 지속되는 상태였다. 또 엄지손가락끼리 마주 붙이면 왼쪽 손가락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파고드는 통증이 느껴지고, 오른팔과 어깨까지 강력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아 엄지손가락을 마주 붙이기가 두려웠다. 

지금은 앉아보니 1시간이 지나도 상체 통증은 거의 없는 상태다. 수행 전 새벽녁에 잠에서 깨면 내가 아수라백작인지 신체 감각이 오른쪽과 왼쪽이 다르게 느껴졌는데. 수행 마지막 날 오전 수행 후엔 온몸의 감각이 동일하게 느껴졌다. 

심리적 부분도 많이 달라졌다. 불칠·선칠 집중수행 첫날, 집으로 향할 때는 가슴 속에 마음 작용이 컸지만 수행 후엔 마음의 속삭임이 아주 미약해졌다. 마음의 일렁임과 출렁임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다. 

비워진 만큼 뭔가 채워진 기분이다. 마음의 느낌이 미약해진 만큼 비워진 자리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 같은 것이 충만해 있다. 또한 머릿속 번뇌도 많이 줄고 푸르른 맑은 기운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집중수행 첫날 법문 시간에 우리의 마스코트인 ‘알롱이’가 수련실에서 노는 것이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마지막 날 알롱이를 보니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밖으로 향하던 감각들이 안으로 향하고 있다. 이 모두가 불보살님들 가피와 부처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우매한 ‘중풍맨’의 좌충우돌 수행기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1501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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