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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들 법당 정문 출입금지는 왕조시대 산물”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9.08.21 14:20
  • 수정 2019.08.21 15:18
  • 호수 1502
  • 댓글 12

이성운 동방문화대 교수 지적
‘어간문’이라는 표현도 부적절
법당 정문 개방이 곧 ‘탈권위’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 초빙교수가 8월21일 법보신문에 ‘불전 정문 출입을’ 제하의 글을 보내왔다. 이성운 교수는 불교의례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불교의례 전문가다. 현재 불교의례문화연구소 연구실장 및 조계종 의례실무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한국불교 의례체계 연구’ ‘천수경, 의궤로 읽다’ ‘삼밀시식행법해설’(공저) 등 저술이 있다. 편집자

한국불교사찰 어디를 가나 불전(법당) 정문에는 출입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불전 정문을 어간문이라고 가르친다. 큰스님들이 출입하는 문이라고 한다. 이는 왕실원당의 산물이다. 왕실원당은 원당주와 원당주를 대신해 기도 올리는 복전[주지]만이 어간으로 출입하고, 시중을 드는 이들이나 의례를 돕는 이들은 좌우나 뒷문으로 출입을 하였다.

과거는 그러했겠지만 현재는 특정인의 원당이 아닌 불자들의 원당이라고 보아야 한다. 해서 붓다님께 참배하고자 하는 이들을 중앙의 정문으로 출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붓다가 될 사람이라고 하면서 붓다님과 정면으로 출입하고 예경을 못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불전 정문은 어간문이 아니라 정문이다. 대궐이나 불전의 삼문은 입문과 출문, 혹은 입측과 출측으로 나눠 중앙으로 다니게 하며 당당한 불교를 하게 해야 한다.

왕조시대에서 파생된 사찰 예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큰스님만 정문을 사용하는 것은 현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정문 출입을 한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권위는 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상과 언어, 실천하는 지성인의 모습에서 권위와 존경이 나오게 된다. 불교 현대화 대중화 포교는 멀리서 찾아서 결코 되지 않는다. 이웃의 벗이 되고 쉼터가 되어야 한다. 정문을 개방하고 오는 대중이 당당하게 부처님께 인사드리게 해야 한다. 광화문도 정문 중앙문으로 다니는 세상이다.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권위를 내세우며 가르치려는 생각은 구시대적이다. 불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는 정보와 지식의 독점으로 권위를 찾는 세상이 아니다. 공개된 정보와 지식을 얼마나 잘 해석하여 활용하는가에 따라 지혜 있는 이인지 아닌지가 판명되는 세상이다. 불전 정문 개방은 권위주의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권위와 지식과 인식의 해탈을 이루지 못하고 불교 잘 하려 하고, 불교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정문부터 개방하는 것이다. 거기서 참 불교는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1502호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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