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선 켜켜이 쌓아 화폭에 재현한 세계유산
세밀한 선 켜켜이 쌓아 화폭에 재현한 세계유산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9.08.21 16:01
  • 호수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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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화가 김영택, 미황사 초대전
8월30일부터 한달간 자하루서
30여년 작품 가운데 40점 엄선
펜화 통해 사라진 문화재 복원
투병 중에도 작업·절수행 매진
펜화가 김영택 화백. 8월30일부터 9월30일까지 미황사 자하루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사찰 등 전통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섬세한 펜으로 세밀하게 재현해온 펜화가 김영택 화백이 해남 미황사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지난 30여년간 한국에 펜화장르를 개척하며 쌓은 300여 작품 가운데 40여점을 엄선해 8월30일부터 9월30일까지 한 달간 미황사 자하루에서 선보인다.

동양에서 수천년간 붓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 서양에서는 펜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15세기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후 펜화는 기록화로서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성업을 이뤘다. 그러나 19세기 카메라의 등장으로 그 역할이 끝나고 기록펜화의 명맥이 끊겼다. 이렇게 사라진 기록펜화가 김영택 화백에 의하여 한국에서 재탄생했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41×58cm, 2015년.

펜화는 인고의 결과다. 한 점의 펜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차례 같은 장소를 방문하고 며칠, 몇주, 심지어 몇 달을 붙들고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0.05mm의 가늘고 섬세한 선을 50만번 이상 그어야 한다. 그렇게 수행의 과정과도 같은 노력의 결과 양산 통도사, 해남 미황사, 금강산 신계사, 부산 범어사,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등 전국의 건축문화재가 정교하면서도 품격 있는 펜화로 재탄생됐다.

김영택 화백은 본래 광고 디자이너였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한때 종합 디자인회사를 운영한 오너였다.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심사위원을 지냈고, 1993년 국제상표센터가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이너 중 탁월한 업적을 쌓은 탑 디자이너 54명에게 수여한 ‘디자인 엠버서더(Design Ambassador)’에 국내 최초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던 1994년 벨기에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 로고디자인 비엔날레 초대작가로 참석해 우연히 펜화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뛰어난 유럽 펜화의 기량과 펜화라는 장르만의 매력, 아울러 문화상품으로서의 높은 가능성 등이 그에게 펜화라는 장르에 도전하고픈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을 여행하며 펜으로 아름다운 우리 자연과 그 속에 어우러진 전통문화재를 그리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아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우리 삶이 추구해야 할 삶은 자연과 함께하는 것’임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금강산 신계사’, 43×60cm, 2007년.

사업마저 접고 펜화 작품을 판화로, 달력으로, 일러스트로 만들어 보급하고 확산하는 일에 오롯이 전념했다. 여기에 다양한 경험과 많은 자료,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펜화를 통해 사라진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그가 복원화로 재현한 황룡사 9층 대탑은 경주 황룡사역사문화관 로비를 빛내고, 세종대왕기념관, 김좌진장군기념관 등에서 김 화백의 작품들이 또 다른 문화재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국내 문화유산뿐 아니라 일본 호류지, 로마 콜로세움, 요르단 페트라 등 세계의 문화유산들도 그의 손끝에서 원형의 모습을 되찾았다.

김영택 화백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펜화임에도 붓으로 그린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는 점이다. 이유는 김화백이 유럽 펜화를 답습하지 않고 독학으로 필법을 개발해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그만의 화법을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서양화의 원근법과는 다른, 인간의 시각에 맞추어 개발한 ‘김영택 원근법’으로 현장에서의 감흥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김영택 화백은 금년 초 병원에서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이 불가능하여 항암치료를 받는 사이 사이에 미황사에서 쉬었고, 그때마다 백혈구 수치가 높아져 항암치료를 받기가 수월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부작용이 큰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금강 스님의 권유로 미황사에 작업실을 차리고 작품활동과 절수행을 병행하고 있다.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 41×58cm, 2012년.

“부처님 품에 모든 것을 맡긴 겁니다. 전시에는 국내외 건축문화재 대표작 40점을 선보입니다. 많은 전시를 했지만 이번 전시만큼 마음이 설레는 전시는 처음입니다. 땅끝마을 외진 장소라 많은 손님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정성껏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한 분이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번 초대전을 마련한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도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스님은 “김영택 화백이 한국과 중국, 일본 및 서구 건축문화재를 펜화로 옮기면서 그만의 화풍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묘사가 아닌 건물에 담긴 장인의 심성까지 담아냈기 때문”이라며 “불가의 선풍을 담은 선화와도 같은 김 화백의 먹색 펜화의 세계를 미황사에서 마음껏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펜화가 김영택 초대전은 8월30일 오후 4시 개막한다. 개막식 후 해남군이 주최하는 김영택 명사초대강연과 서정숙 한국무용가, 허시라 해금연주가의 축하공연도 진행된다. 061)533-3521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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