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아비다르마불교의 사상적 전개양상 ③
81. 아비다르마불교의 사상적 전개양상 ③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09.09 16:11
  • 호수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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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법에 대한 해석은 일의적이지 않고 다양

초기불교의 연기와 법 의미
대승불교와는 확연히 달라
유부, 연기는 실체 아니지만
5위75법의 요소는 실체 간주

연기와 법의 관계성은 초기불교 이래 아비다르마불교와 반야・초기중관을 거쳐 유식사상에 이르기까지 사상구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연기’란 '연기의 이법이나 인과관계(혹은 인연법), 또는 연생법' 등으로 법은 진리(진실), 교법(가르침), 현상, 요소나 성질' 등으로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하지만 초기경전에서 연기와 법의 관련기술은 연기와 법이 지시하는 의미와 그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특히 초기불교에서는 연기나 법이 의미하는 바가 세속인지 승의인지 그 존재론적 위상이 그다지 명확하게 제시되지않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상윳타니카야’와 ‘구사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연기와 법에 대한 설명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 “비구들이여! 생에 연하여 노사가 있다.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이 계(sā dhātu)는 정해져있고, 즉 그것(=dhātu))은 법의 확립성, 법의 확정성, 차연성(此緣性, 연기의 이법)이다.”(SN. Ⅱ) ⒝ “다른 부파(화지부)는 ‘연기는 무위이다’라고 주장한다. ‘여래들이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실로 이 법성(dharmatā)은 정해져 있다’라고 중부경전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AKbh)

초기경전에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는 기술에서 연기와 등치되고 있는 법이란 12연기의 각 지분이 아니라 생과 노사라는 두 항의 관계를 지시하는 연기의 이법으로 이해된다. 한편 ‘구사론’에서는 연기가 무위로 언급되고 법성으로 제시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상기의 초기경전과 ‘구사론’의 ‘여래가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등의 기술방식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친이 ‘법성(dharmatā)’이라는 표현을 ‘연기’로 대체하여 이해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의 ‘계(dhātu)’와 ⒝의 ‘법성(dharmatā)’은 용어상 다른 점이 인정되지만, 그 의미는 거의 대동소이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의 단계에서 천명된 연기의 의미는 연기의 이법으로 이해되지만, 그 진리차원이 불분명한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화지부에서는 ‘구사론’의 기술을 통해 연기가 무위로 언급되고 있는 점에서 연기의 이법이란 승의의 차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유부는 연기를 연에 의해 생기하는 것, 즉 인과관계로 보며, 생기란 유위를 특질로 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유부는 화지부와 달리 연기 자체를 상주하는 것으로 실체시하지 않는다. 다만 유부는 연에 의해 생기하는 개개의 구성요소(dharma)를 실체로 간주한다. 사실 유부는 연기의 이법보다 개개의 법(dharma)을 더욱 중요시한다.

이러한 유부의 연기와 법에 대한 이해방식은 그들의 이제설과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즉 유부는 존재를 이제적인 차원에서 세속유(saṃvṛtisat)와 승의유(paramārthasat)로 구분한다. 이때 세속유(世俗有)는 꽃병이나 의복 등과 같이 형태가 부서지거나 물이나 불과 같이 지혜로 분석하면 여러 요소로 나뉘어져 꽃병이나 물 등으로 불릴 수 없는 것을 세간의 상식적인 차원에서 꽃병이나 물 등의 명칭을 부여한 것을 말한다. 이는 가유(假有)로도 불린다. 반면에 승의유(勝義有)는 이른바 존재의 구성요소로서 ‘5위 75법’이라는 유위와 무위의 다르마를 말한다. 이는 실유(實有)로도 불린다.

결국 연기와 법에 대한 이해방식은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의 중관과 유식사상에 이르기까지 의미가 일의적이지 않다. 연기와 법의 의미는 인과관계의 적용유무에 따른 유위와 무위의 범주나 이제설과 관련하여 부파나 학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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