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김연아의 배려 ①
130.  김연아의 배려 ①
  • 김정빈
  • 승인 2019.10.14 18:00
  • 호수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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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연아, 위험 무릅쓸지언정 회피하지 않았다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하는 뚝심에
타고난 재능 가진 김연아 선수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 벽 돌파
세계선수권 우승 후 국민적 관심
올림픽에 대한 부담은 극에 달해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1990년에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취미로 배우게 된 피겨 스케이팅에서 재능을 보인 그녀를 보고 류종현 코치가 김 선수의 어머니 박미희씨에게 전문 선수로 키워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김 선수의 어머니는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연아 선수에게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는 뚝심이 있었다. 그녀를 지도한 류종현 코치에 따르면 새벽에 훈련을 위해 차를 몰고 일곱 살 연아가 사는 아파트에 가면 어린 연아가 머리까지 단정하게 잘 단장을 한 모습으로 계단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에 이런 노력이 더해져, 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트리플점프 5종류를 성공시키는 놀라운 실력을 보임으로써 불과 열네 살의 나이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

김연아 선수의 성공은 그녀가 처해 있었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더욱 빛난다. 그녀의 경쟁자였던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의 경우 여러 면에서 국가적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김연아 선수는 한국의 빙상연맹으로부터 기초적인 지원만을 받은 상태에서 개인의 힘만으로 훈련을 했었다.

2008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연아는 그전에 있었던 거의 모든 대회에서 1등을 해오다가 가장 중요한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 악재가 또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중요한 대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쇼트 프로그램 경기에서 첫 번째 트리플 점프를 뛰고 나서 격심한 통증이 왔다. 두 번째 점프를 뛰기까지의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것이 문제가 되어 연아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하여 거둔 성적이 5위. 여러 시간 동안 흐느껴 울었다.

다음 날, 프리 스케이팅을 앞두고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가 연아에게 말했다. 

“오늘 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아는 그 말에서 큰 힘을 얻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결과에 대한 욕심을 비운 그 겸허한 마음가짐의 힘은 컸다. 워밍업을 하는 동한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실전을 연습처럼’ 연기했다. 부상 때문에 연습이 부족한 상태였고, 그래서 4분 10초를 견뎌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후반부에서 실수를 하기도 했고,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한 연기도 있었다. 드디어 ‘미스 사이공’이 끝났다. 성적표의 숫자는 연기에 비해서는 잘 안 나왔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3위를 차지했다.

경기장을 나오면서 그녀는 결심했다. ‘건강관리도 실력이다. 내년에는 부상 없이 세계선수권대회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현실이 되었다. 그다음 해인 2009년에는 부상이 없는 건강한 상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대회에 임했고 연아는 세계인을 감동시킨 쇼트 ‘죽음의 무도’와 프리 ‘세헤라자데’를 훌륭하게 연기함으로써 여자 선수로서는 최초로 200점의 벽을 돌파하며 2등과 23점 차로 우승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이런 연아 선수를 가리켜 ‘다른 선수를 2군으로 밀어내 버렸다’고 평했다. 그녀는 ‘다른 레벨의 선수’가 되었다. 그동안 연아는 시상대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만은 눈물을 안 흘릴 도리가 없었다. 이제 정복하지 않은 봉우리는 단 하나, 올림픽 금메달뿐이었다.

다음 해인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그 직전 해인 2009년부터 그해 올림픽이 있기까지의 대회에서 연아는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었다. 따라서 세계의 언론들은 연아를 올림픽 금메달 1순위로 거론하고 있는 건 당연했다.

한국 팬들의 기대 또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열렬한 기대가 선수에게 주는 부담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스무 살. 가녀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오천만 국민들의 성원은 연아의 마음을 천근, 만근처럼 무겁게 만들었다. 그 부담감을 안고 연아는 캐나다로 향했다.

‘살얼음판 같다’는 표현이 있지만 피겨 스케이팅이야말로 바로 ‘살얼음판’ 위에서의 승부이다. 얇기가 종잇장 같은 두 개의 날 위에 얹힌 스케이트를 신고 선수들은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활주하고, 뛰고, 점프하고, 연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심리적인 부담도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담대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어려움을 당하면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치고 나가는 정신이 그녀에게는 있었고, 위험을 무릅쓸지언정 그것을 회피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이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여자 피겨 싱글 경기에서 올림픽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이변을 연출했었다. 당대의 일인자들이 올림픽이라는 가장 중요한 대회가 주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미셸 콴이다. 중국계 미국인인 그녀는 “빙판에 서 있기만 해도 우승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한 최강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올림픽에 두 차례 출전하여 한 번은 동메달, 또 한 번은 은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그녀가 실수를 하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첫 번째 금메달은 세라 휴즈가, 두 번째 금메달은 타라 리핀스키가 가져갔다.

그만큼 부담이 큰 올림픽 경기이기 때문에 2009~2010 시즌 동안 모든 대회에서 1등을 해온 김연아 선수라고 해도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딸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 미국의 미라이 나가수 등도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피겨 싱글 첫째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연아 선수의 가장 큰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아사다 마오 선수는 그동안 쇼트에서 클린 연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놀라운 투지를 보이며 깨끗하게 프로그램을 수행해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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