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우물과 용왕
58. 우물과 용왕
  • 이제열
  • 승인 2019.10.29 09:43
  • 호수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네 우물을 용왕이 관리한다고요?

많은 아이들 부스럼에 걸려
축사 등 오염된 우물이 원인
매년 용왕제 올려도 소용없어
불교의례서도 비불교 없애야

내 고향은 충청남도 아산이다. 동네 뒤에는 나지막한 산이 있고 동구 밖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아늑하고 평온한 마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열두 살까지 살았고 이후에는 부모님을 따라 약간 도회지 분위기가 느껴지는 면소재지에서 살았다. 그런데 나는 고향에서 사는 동안 아주 심한 부스럼을 몸에 안고 살다 시피 했다. 종기는 배, 등, 다리, 팔을 비롯해 온몸에 쉴 사이 없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곤혹을 겪었다. 약이라고 해야 기껏 마을 어귀 점포에서 파는 고약이 전부였고 어쩌다 병원에서 치료라고 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금도 그 시절에 앓은 종기들 흉터가 몸 곳곳에 남아 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이웃 할머니가 종기에는 갓난아기 똥을 바르면 낫는다고 말해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두어 숟가락이나 되는 똥을 배에 바르고 천으로 배를 감쌌던 적이 있다. 그런데 종기는 비단 내게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종기에 시달리거나 피부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당시 내 친구들만 해도 일고여덟이 이런 질환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내 막내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부스럼을 안고 태어났다. 병을 치료하겠다고 검증되지도 않은 독한 약을 마구잡이로 바른 결과 한쪽 눈이 실명되기까지 했다. 답답한 일은 당시 이런 지독한 피부병이 왜 우리 마을에 생기게 됐는지 아무도 몰랐고 이를 규명하려는 생각이나 시도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 그때 일을 돌이켜보면 진원지는 마을의 공동우물이었다. 오염될 대로 오염된 우물이 동네 사람들의 피부에 갖가지 질환을 일으켰던 것이다. 우물은 깊어 물은 깨끗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주변은 온통 각종 병을 불러올 만큼 지저분했다. 각 가정에서 버린 더러운 물들과 짐승을 키우면서 나오는 온갖 배설물들이 우물 주변의 도랑을 통해 흘렀다. 이로 인해 우물 주변은 시궁창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렇다고 마을에서 우물 관리를 아주 안한 것은 아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이 모여 우물을 청소하고 정성을 드렸다. 건장한 아저씨들이 큰 두레박을 이용해 물을 모두 퍼내고 우물 안을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는 조촐하게 용왕제를 올려 우물에 변고가 없기를 기원했다. 우물 앞에 떡과 과일을 올리고 동네 무속인을 불러 주문을 외게 했는데 무속인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면서 쌀을 우물 안에 뿌렸다. 마을 사람들도 함께 무속인을 따라 열심히 절을 하였다.

사람들은 우물을 관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용왕님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주변은 온통 오염되도록 만들면서 우물에 이상이 없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행사를 해마다 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연을 지닌 우물이 없어진 것은 내가 고향을 떠난 뒤 한참 후인 새마을운동이 일어난 때였다.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농촌은 일대 변혁이 일어났고 그 영향을 받아 고향의 우물은 폐쇄되었다.

그런데 일부 불교인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바다나 하천 혹은 우물물을 용왕이 관리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수륙재나 방생법회 때에도 용왕을 불러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한다. 부처님도 할 수 없는 일을 용왕이 한다고 믿는 것이다. 강과 바다가 오염되어 생태계가 파괴 되고 각종 공해로 인해 기후가 급격히 변한 지금 이 시대에 과연 용왕의 위력이 작용할까?

잘못된 의례는 잘못된 견해를 고착화시킨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오늘날 우리는 보다 폭넓은 지식을 갖추게 됐다. 50년 전 혹은 그 이전에 용왕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전승되는 불교의례를 꼼꼼히 검토하고 비불교적 요소가 있다면 이를 적극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불교의 정법화이자 현대화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