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임이의 ‘지둔애마도(支遁愛馬圖)’
43. 임이의 ‘지둔애마도(支遁愛馬圖)’
  • 김영욱
  • 승인 2019.10.29 10:50
  • 호수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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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의 ‘공’과 노장의 ‘무’는 동일하다

말·학 사랑한 동진 승려 지둔
강남 지역 불교 홍포에 공헌
청나라 화가 임이가 그린 작품
맑고 우아한 색채로 정신 담아
임이 作 ‘지둔애마도’, 종이에 먹과 엷은 채색, 135.5×30.0㎝, 1876년, 중국 상하이박물관.
임이 作 ‘지둔애마도’, 종이에 먹과 엷은 채색, 135.5×30.0㎝, 1876년, 중국 상하이박물관.

生來死去處(생래사거처)
畢竟如何是(필경여하시)
太虛本寂寥(태허본적요)
脚下淸風起(각하청풍기)

‘태어나 와서 죽으면 가는 곳 결국은 어느 곳인가? 태허는 본래 고요하니 다리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는구나.’ 청허당 휴정(淸虛堂 休靜, 1520~1604),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래(還鄕曲)’.

‘고승전(高僧傳)’을 읽다보면, 말과 학을 사랑한 동진(東晉)의 승려 지둔(支遁, 314~366)의 일화를 접할 수 있다. 그의 생애가 담긴 ‘세설신어(世說新語)’에도 비슷한 일화가 전한다. 그 일화를 함께 다듬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둔이 강동의 섬산(剡山)에 머물 때, 어떤 이가 말 1필과 황금 50냥을 전해주었다. 지둔은 황금을 버리고 말을 귀여워하며 정성스레 키웠다. 황금은 이자를 남길 수 있지만, 말은 풀만 뜯어 먹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보니, 지둔이 환하게 웃으며 “저는 그저 이 말이 가진 성품을 사랑할 뿐”이라고 답했다.

또 하루는 어떤 사람이 학 2마리를 선사하였다. 학이 날아오르려고 하였기에 날개를 부러뜨려 놓았는데, 날 수 없었던 학이 지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슬퍼하였다. 이에 지둔이 “넓은 하늘을 나는 새가 어찌 사람들의 눈과 귀의 노리개가 될 수 있겠는가?” 말하고, 학이 날개를 펼 수 있게 되자 넓은 하늘에 놓아주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지둔애마도’는 청대 화가 임이(任頤, 1840~1896)가 그린 작품이다. ‘임백년(任伯年)’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청대 말기 상하이를 중심으로 그 시대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해상화파(海上畵派)의 지도자였다. 특히 맑고 우아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필치로 당시 대중들이 선호하는 현대적 화풍을 창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로로 긴 화면에 선인(仙人)을 상징하는 길게 솟은 파초가 특유의 맑은 채색이 더해져 한껏 청신함을 자랑한다. 그 아래로 옅은 갈색 가사를 입은 지둔이 긴 지팡이를 잡은 손에 다른 손을 올려둔 채로 말의 눈을 바라본다. 말은 담묵(淡墨)을 이용한 몰골(沒骨)로 시원스레 그려냈으나, 그 형상에 골격과 정신이 잘 녹아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질 무렵, 화북 지방에서 도안(道安)이 불교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면, 지둔은 노장의 현학에 몰두한 강남 지역 문화에 반야를 중심으로 불교를 널리 퍼뜨리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처럼 노장(老莊)의 현학적 불교를 대표하는 지둔의 일화는, 반야(般若)의 ‘공(空)’과 노장의 ‘무(無)’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 그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지둔은 말한다. “물(物)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소요(逍遙)를 통해 태허(太虛), 즉 불가의 진리인 ‘공(空)’에 이를 수 있다.” 황금을 버리고 말의 성품을 사랑하여 기른 지둔의 마음이 담긴 한 장의 그림 속에 맑은 ‘공’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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