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삶
맹목적인 삶
  • 성원 스님
  • 승인 2019.11.12 14:31
  • 호수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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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전 삶의 목적 되돌아보니
도무지 목적이 분명한 게 없어
시간 흐름 잊지 않는 삶이 먼저

어릴 때는 언제나 계절이 우리들의 감성보다 더디게 흘렀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고, 여름, 가을 또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유독 봄을 많이 기다렸던 것 같다. 3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를 외우고 또 외우며 봄을 기다렸던 생각이 새록새록 하다. 

입김으로 호호/ 유리창을 흐려 놓고/ 썼다가는 지우고/ 또 써 보는 글/ 봄 꽃 나비/봄 꽃 나비/ 봄아 봄아 오너라 어서 오너라/ 봄이 되면 나는 나는 새로 사학년 (‘봄 꽃 나비’)

교실청소로 유리창을 닦으며 이 글들을 써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글을 쓴 게 아니라 봄을 시의 내용만큼 기다리고 기다렸다. 고교시절엔 찬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는 가을이 기다려졌다.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내 곁에 와 주었던 계절들이 어느 순간 기다릴 틈도 없이  지나가 버리기 시작했다. 정말 돌아보면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가 버린 때도 있었다.

이 가을도 그렇게 놓쳐버리고 생각해 보니 내가 도무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제 경전반 수업시간 때의 일이다. 출가 전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시절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무슨 일을 앞에 두고 이것을 하고 나서 뭘 할 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성취하고 나면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은?’ 도무지 3번을 넘어 그 목적이 분명한 게 없었다. 

학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정말 두 번 세 번 묻자 답을 잇지 못했다. 한 수강생은 세 번째 질문에 “그러다 죽는 것이지요”라고 당당히 대답하고 답을 멈추었다. 스스로도 더 이상 어떤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맹목적인지, 그야말로 목적이 맹(盲)한가를 한 번쯤 되돌아보자는 뜻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계절도 잊을 정도로 바삐 살고 있지만 알고 보면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리 살고 있다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불교를 달리 공문(空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허무주의와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는 허무를 주창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우주의 본질에 대해 그 어떤 인간보다, 인류의 그 어떤 업적보다 정확히 갈파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이 너무나 맹목적이고 놀랍게도 자신의 기존 지식과 의식에 집착한다는 것을 아시고 그 본질적 인식 구조를 일깨워 주려고 팔만사천법문을 설파하신 것이다. 

자신이 가진 일생이라는 시간들이 휙휙 지나쳐가는데도 아무런 인식도 못하고 일상에 묻혀 계절의 흐름도 모른 채 우리들은 살아가는 것이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학인들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혼자 생각에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맹목적인가를 깨우쳤구나 하고 혼자 생각하고 위로차 “자괴심을 갖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나 혼자의 착각이었다. 일어서면서 누군가가 말했다. “스님, 그냥 이렇게 살래요. 너무 목적이 뭔지 이런 생각 하니 너무 머리가 아프고 피곤해요.” 갑자기 모두 웃었다. 우리의 삶이 진정 맹목적임은 인정하면서도 그 어떤 대책을 강구하려는 의식은 더 어렵고 귀찮아했다. 그냥 맹목적으로 살더라도 제발 계절의 흐름까지 잊은 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 년 전 원효 스님도 ‘급하지 아니한가? 급하지 아니한가?’ 하시며 공부하기를 독려하였다. 어느 날 문득 죽음 앞에 맞닿았을 때 우리들이 그때 후회하기엔 너무 늦지 않을까?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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