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금강경의 ‘금강’
43. 금강경의 ‘금강’
  • 현진 스님
  • 승인 2019.11.19 09:40
  • 호수 15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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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 물리친 이 세상서 가장 단단한 물체

인도신화의 선신·악신 대결서
악신 물리칠 때 사용한 무기
금강경 명칭서 중요한 건 ‘반야’
지혜 힘으로 피안 건너다 의미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온전한 이름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密多經)’이며, 그 원전에 해당하는 범어로는 ‘와즈라체디까­쁘라즈냐빠라미따­쑤뜨람(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m)’이란 긴 이름을 갖고 있다. 한문 이름을 해석하자면 ‘금강석(金剛)도 끊어버릴(能斷) 수 있는 지혜(般若)로써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波羅密多)에 대해 설해놓은 경전(經)’이 된다. 이 가운데 ‘반야’와 ‘바라밀다’는 범어를 그대로 소리옮김한 것이다.

굳이 범어로 된 경명을 해석하자면 ‘와즈라(vajra)도 끊어버릴 수 있는(cchedikā) 지혜(prajñā)로써 피안으로(pāram) 가는(√i) 상태(tā)에 대한 경전(sūtram)’이니 한문해석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한문에서 ‘금강’으로 번역된 것이 범어로 ‘와즈라’인데, 와즈라는 보석이자 가장 단단한 물질인 금강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정체는 무엇이며, 왜 금강(金剛)이라 번역하였는가?

우선 인도신화에서 악신과 선신 간의 반복되는 전쟁의 유형을 살펴보자. 인도문화에서 선악의 개념은 중국문화의 그것과 같지 않은데, 선신에 해당하는 데바(deva)와 악신으로 간주되는 아수라(asura)는 인간과 더불어 모두 창조주 쁘라자빠띠의 자식으로 표현된다. 같은 어머니 아래 착한 아들과 나쁜 아들 및 그렇고 그런 아들인 세 아들이 있는 셈이다. 이들 가운데 선신과 악신은 항상 티격태격하는데, 그 다툼의 유형이 거의 일정하다.

신계에서 선신이 그럭저럭 빛이나 내뿜으며 지내는 동안 악신은 와신상담과 까치발의 혹독한 수행을 통해 엄청난 힘을 기르게 된다. 악신은 길러진 힘을 앞세워 선신을 공격하므로 선신은 여지없이 싸움에서 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궁지에 몰린 선신은 브라흐마 등 아주 힘이 센 몇몇 신에게 쪼르르 쫓아가 애걸복걸하게 되고, 선악의 상대성을 지닌 두 부류 신들보다 한 등급 높은 절대적인 신은 항상 선신의 편에서 악신을 달래거나 혼내주어 선신의 승리 아닌 승리로 전쟁이 끝을 맺도록 만든다. 그러면 악신은 다시 또 와신상담을 하게 되고.

인드라를 위시한 선신의 무리들이 한 번은 브릐뜨라(vṛtra)를 앞세운 악신의 무리에게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는 거의 패퇴될 지경에 이르자 인간 가운데 이를 지켜보던 선인(仙人) 다디찌(dadhīci)가 선신들을 돕고자 나섰다. 그는 오랜 고행을 통해 성취한 수행의 불길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태워 뼈만 남게 하고는 선신들로 하여금 그 뼈를 가져다 공예의 신에게 의뢰하여 지금까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기를 만들도록 하였다.

다디찌의 뼈로 만든 무기는 원반형으로 중간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인데, 그것을 던지면 적에게 날아가 목을 베고는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수행력이 높은 선인의 뼈인데다 공예의 신이 특별히 가공한 것이라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여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동시에 그 무엇에도 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단단한 무엇에 부딪치면 항상 불꽃이 튀었는데, 이 불꽃이 인간의 눈에는 번개로 보인다고 한다. 이것을 가지고 인드라는 브릐뜨라와 악신의 무리를 물리쳤다 하는데, 그 무기가 와즈라이다.

그래서 와즈라는 이 세상의 가장 단단한 물체인 까닭에 금강(金剛, diamond)으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의 기다란 원래 이름에서 정작 중요한 단어는 ‘금강’이 아니라 지혜를 의미하는 ‘반야’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눈앞에 놓인 것을 보고 그것을 알듯이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앎’을 의미하는 ‘반야’는 가장 단단한 무기인 와즈라도 손쉽게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이니, 그런 지혜의 힘으로 피안에 건너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금강경’을 일컬을 때 굳이 ‘지혜의 경전’이란 사족 아닌 사족을 항상 다는 이유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13호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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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범 2019-11-22 11:11:05
한역(漢譯) 불경에 의존한지 1000년이 되었건만, 이 나라 불교계는 여전히 중국인들이 번역한것을 가지고 주술 암송하듯 외고있으니, 언제 이땅의 불교에 새로운 꽃이 활짝 필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