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이제설의 전개양상 ②
92. 이제설의 전개양상 ②
  • 김재권 교수
  • 승인 2019.12.02 16:57
  • 호수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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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학파 이제설은 유부와 용수 이론의 절충

유부와 용수의 견해 차이는
제법실유와 무자성의 대립
유식학파는 두 견해를 절충
승의유·세속유·실유로 구분

이제설은 ‘맛지마니카야’의 ‘연기를 보는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본다’라는 이해방식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유부는 법(dharma)을 ‘자상(自相) 혹은 자성(自性)을 지니기 때문에 법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법은 연기의 이법이 적용된 유위와 무위의 다르마, 즉 일체법을 나타내는 5위75법으로 이제적인 차원에서는 승의에 해당된다. 하지만 용수는 ‘일체법무자성’이라는 입장에서 유부의 실체적인 법에 대한 이해방식을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유부와 용수의 견해는 자성실재론(自性實在論)과 자성공론(自性空論)의 대립으로 이해된다. 

‘중론’에서 용수가 가장 역점을 두고 제시하는 비판적 논점은 유부로 대표되는 유자성론(有自性論)에 놓여있다. 

용수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그 자신이 규정한 자성(自性, svabhāva)의 관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이른바 법(dharma)이 자성(自性)을 가진다고 보는 유부로 대표되는 법의 이해방식과 자성의 특질을 가진다고 생각되는 원리 등을 전제로 하는 실재론적 학설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용수는 ‘반야경’의 공관에 따라 ‘공(空, śūnya)’이 의미하는 바는 ‘연기’가 의미하는 바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용수가 제시하는 ‘공’은 자성공(svabhāvaśūnya, 自性空), 즉 무자성을 의미한다. 예컨대 유부가 내세우는 자성은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규정되는데, 용수는 모든 것이 형성된 것(有爲)이고 연기한 것(緣生法)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러한 용수의 입장은 ‘반야경’의 비실재적인 언어관이 반영된 공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이제적인 차원에서 연기와 공성 등은 승의이며 일체법은 세속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용수는 유부가 승의제로 내세우는 법을 세속적인 차원의 연생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면에 유식학파의 이제설은 유부와 용수의 법에 대한 이해방식을 비판적으로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구사론’에 제시된 유부의 이제설에 대한 야쇼미트라의 주석을 보면, 간접적이지만 유부와 용수의 견해를 절충한 방식이 엿보인다. 즉 “실로 유식학파에게 있어서 존재는 3종이다. 즉 승의유(勝義有)․세속유(世俗有)․실유(實有)이다. 실체로서 즉 자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실유이다. (AKVy)” 요컨대 야쇼미트라의 견해에 따르면, 유식학파의 이제설이 3종의 존재(승의유․세속유․실유)로 제시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요컨대 유식학파의 이제설은 유부의 견해와는 달리 승의유와 실유를 준별하고, 즉 승의유는 불가언의 공상(법계․법성 등)으로 일견 용수의 견해와 일맥상통하고, 실유는 가설의 의지처로서 색 등의 제법을 나타내며 이는 가유와는 구별된다. 

결국 유부의 입장에서 세속은 명칭, 언어표현, 가설, 언설 등으로, 승의는 제법의 자상으로 설명된다. 용수는 ‘반야경’의 ‘일체법무자성’이라는 입장에서 세속은 언어표현 등에 불과한 것으로 유부와 같이 색 등의 법을 승의로 인정하지 않고 이를 세속의 차원으로 보며, 또한 유식학파와 같이 세속의 차원에 언설이나 가설(=세속유)과 구별되는 자상을 가진 세속적 존재인 업과 이숙 등의 법을 실유로서 별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용수 등에게는 색 등의 제법이나 업과 이숙은 세속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유식학파는 제온에 대한 개아 등의 명칭은 세속적 존재로, 업과 이숙 등의 법은 승의적으로는 무이지만, 세속적으로는 자상을 가진 실유로 보는 점에서 그 차이를 드러낸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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