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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김홍도 ‘타작’

기자명 손태호

밥은 곧 하늘이고 정성이며 부처님 자비입니다

‘X’자 구도로 오른쪽 위에서 시작
마름의 눈으로 농민들 심리 표현
수확의 기쁨과 수탈 어두움 교차
오른손 반대로 묘사 단원표 ‘조크'
꼼꼼히 살펴야 진가 알 수 있어

김홍도 作 ‘단원풍속화첩’ 중 ‘타작’, 지본담채, 27×22.7cm,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作 ‘단원풍속화첩’ 중 ‘타작’, 지본담채, 27×22.7cm,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며칠 전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택배로 쌀 20kg이 배달돼 있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친한 후배가 올해 수확한 햅쌀을 먹어보라고 보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쌀이 도착한 것입니다. 쌀을 선물 받으니 이 쌀이 저희 집에 도착하기까지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떠오르는 그림이 한 점 있었습니다. 바로 김홍도의 ‘타작’이란 그림으로 아마 교과서에서 보았던 낯익은 그림일 것입니다. 

교과서에 수록된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너무 유명하고 익숙해서 자세히 감상하지 않고 대충 감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김홍도 그림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김홍도의 풍속화는 꼼꼼히 살펴봐야 그 진가를 알아챌 수 있는 그림입니다. 

벼 타작이 한창입니다. 현장에 마이크가 있다면 벼를 내리치는 농부의 기합소리, 벼가 나무에 부딪치는 소리, 빗질하는 소리, 수확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노동요까지 어울려 시끌벅적하고 활기 넘치는 현장감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7명으로 구도를 놓고 보면 김홍도표 ‘X’자 구도입니다. 먼저 눈길이 가는 인물은 오른쪽 위에 갓을 쓰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인물입니다. 짚단 위에 자리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앞에 술병을 보니 벌써 한 잔을 걸쳤는지 갓이 벗겨지기 직전입니다. 이 사람은 지주 또는 마름으로 벼 타작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마름은 지주를 대신해 소작농을 관리하며 소작료를 받아 지주에게 받치는 일종의 관리자입니다. 이 인물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이유는 우리 옛 그림은 오른쪽 위에서부터 감상이 시작되는데 이는 세로쓰기와 우측에서 좌측으로 글을 쓰고 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인물보다 크게 그렸습니다.

그림 감상이 이 마름에서 시작되어 감상자의 시각은 무심코 벗어놓은 신발로 이어지고 신발 방향을 따라 다시 자연스럽게 양쪽 농부들로 이어집니다. 김홍도가 왜 천재인지 보여주는 탁월한 시선유도 방법입니다. 한쪽 신발 방향은 굳은 표정으로 볏짐을 내리치려는 총각으로 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즐거운 표정으로 함께 모여 있는 세 명의 인물로 향해 있습니다. 이 네 명의 인물들은 ‘개상’이라고 불리는 나무둥치에 볏단을 쳐서 탈곡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둥치에 쳐서 탈곡하는 것은 오직 벼가 유일하며 보리는 도리깨를 사용합니다. 

벼를 털 때 볏짚이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볏짚을 묶어주어야 하는데 제일 오른쪽 인물이 묶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위에 지게를 지고 오는 인물은 추수한 볏단을 가져오고 있는데 지게의 방향과 시선처리가 우 하단으로 이어져 ‘X’자의 나머지 한축을 구성합니다. 등을 보이는 인물은 옷이 올라갈 만큼 힘차게 볏단을 내리치고 있는데 떨어진 쌀을 발로 밟기가 좀 그랬는지 버선을 신고 있고 오른손을 반대로 그린 것은 김홍도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원표 조크((Joke)입니다. 

가슴을 풀어 헤친 총각의 얼굴은 가장 어두운 표정입니다. 조선후기에 농부의 5%는 땅만 빌려주고 수확물을 나눠 받는 농민, 25%는 본인 논을 경작하는 자작농, 나머지 70%는 타인의 땅을 빌려 경작하는 소작농입니다. 소작농은 지주와 수확물을 5:5로 나눠야 하는데 경기를 제외한 호남, 경상, 충청 등 대부분의 농촌에서는 자기 몫 50%에서 10%의 세금과 종자 값까지 내야하니 실질적으로는 수확물의 30% 이상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그마저도 봄 보리고개때 빌린 곡식을 갚고 나면 결국 세금과 종자 대금을 갚지 못해 군역으로 끌려가거나 소나 집을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추수는 1년 농사를 수확하는 기쁜 순간이지만 가혹한 수탈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굳은 표정의 총각은 이런 소작농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측 하단의 인물은 털린 낱알을 모으려 비질을 하고 있는데 노동 강도가 쎈 쌀을 터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맡겼으니 비교적 나이가 있는 분은 비질이라도 해야 눈치를 안 받겠지요. 

전체적으로 심드렁한 표정의 마름, 수확의 기쁨으로 웃는 농부, 1년 내 고생했지만 가혹한 세금과 종자 값까지 부담해야하는 분노의 표정인 농부, 이젠 기운이 부족해 힘든 노동보다는 보조 역할밖에 할 수 없는 나이 든 농부 등이 어우러진 희비(喜悲)가 교차하는 타작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작’에 대한 기존의 많은 해설에서는 누워 있는 마름보다는 타작을 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타작의 기쁨과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며 김홍도가 저 마름을 시각적 출발 위치에 배치한 것과 다른 인물보다 더 크게 그린 이유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림은 부감법으로 공중에서 바라본 시점이지만 사실은 누워서 농부들을 바라보는 마름의 시각일수도 있습니다. 마름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여러 인물들의 심리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과 거래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보는 그런 능력이 없으면 마름의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감상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점도 바로 ‘마름이 바라본 농부들의 마음’, 이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인 계급인 김홍도가 지주들에게 제발 좀 보라고, 농부들이 즐거우면서도 얼마나 불행하며, 기쁘면서도 한없이 고통스러운지를. 좀 알아달라고 농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단원의 풍속화첩은 비록 평범한 민중들을 대상으로 그렸지만 그림의 감상자는 당연히 타작하는 농부가 아니라 양반 계층입니다. 그 양반들에게 힘들게 고생하고 그럼에도 수확이 수탈로 이어지는 농부들의 고통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해석한다면 너무 자의적 해석일까요? 요즘 청소년들은 쌀을 수확하는 광경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쌀은 쌀 나무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벼는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1만5000년 전 재배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될 만큼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농작물입니다. 지금은 농업기계의 발달로 모를 심거나 가을 수확도 전부 기계로 대처하지만 몇십년 전만 해도 가장 힘들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작물이었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부처님께 쌀을 공양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사시예불을 올리면서 늘 흰 쌀을 공양 올리는 사시마지를 행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인 사월초파일에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면서 6가지 재물을 공양하는 육법공양에 향, 연등, 과일, 꽃, 차와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쌀입니다. 또 동지에는 동지마지라고 하여 팥죽으로 불공을 올리고 신자들과 나누어 먹기도 하는 등 한국불교는 민속 고유의 쌀 신앙을 포용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신도들도 현금 대신 일부러 쌀을 가져와 부처님께 정성껏 올렸고 그래서 사찰에서는 공양미 한 톨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11월11일은 국적 불명의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법정기념일로 쌀로 만든 가래떡의 의미인 ‘농업인의 날’입니다. 밥은 곧 하늘이고 정성이며 부처님이고 자비입니다. 귀한 쌀을 보내준 후배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농부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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