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 구해주신 관세음보살님
1. 어머니 구해주신 관세음보살님
  • 광우 스님
  • 승인 2020.01.06 10:22
  • 호수 15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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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님 가피는 지금 바로여기에 항상합니다

팔순 넘긴 어르신이 들려주신
불심 깊은 어머니 가피이야기

어머니 아들 발원 기도올리자
몽중에 관음보살님 잉어 건네
이후 건강한 아들 낳아 잘키워
어머니 가슴 혹도 씻은듯 쾌차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힘들고 괴롭고 답답한 일에 부딪힐 때가 있다. 어떤 이는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어떤 이는 너무 힘들어 막막함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 주저앉아 버릴 때도 있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선남자들이여,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들은 마땅히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시느니라.”

지금부터 일 년 전쯤이었다. 목포에 살고 계시는 최아무개 거사님께 연락이 왔다. 연세가 팔십을 넘기신 어르신이었다.

“스님! 제가 이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 모친의 기도 가피 이야기를 세상에 남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의 거짓도 아닌 진실입니다.”

거사님의 부모님은 전라도 나주 근처 아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살고 계셨다. 가난한 집 형편에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더 큰 불안과 걱정 근심이 있었다. 어머니가 그 동안 아들 넷을 낳았는데 아이들 모두 낳기만 하면 차례대로 여섯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가슴을 내리치면서 전생의 업보가 두터워 내 팔자가 이리 더럽다고 오열하였다. 아버지는 화병이 나서 매일 술에 젖어 살았다. 항상 어머니를 때리고 구박하였다.

어머니는 불심이 깊었다. 틈만 나면 절에 가고 매일 염불을 하였다. 항상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였다. 퍽퍽한 살림 속에서도 조금씩 모아둔 쌀을 쥐고서 절에 가 불공을 올렸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이 나주에 있는 ‘복암사’라는 절이었다. 집에서 절까지 10킬로미터를 걸어 가야했다. 어머니는 절에 가면 부처님 앞에서 건강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염없이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불렀다.

새해 첫 날을 맞이하였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집 안 물건을 다 때려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어머니는 서러워 펑펑 울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절로 향했다. 법당에 앉아 부처님 앞에서 숨죽여 울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저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부르고 또 불렀다. 순간 비몽사몽이었다. 왕관을 쓴 보살님이 나타났다. 큰 잉어를 건네주며 말씀하셨다.

“집에 가져가서 잘 키워라.”

화들짝 놀라며 치마폭에 잉어를 덥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법당 안이었다.

“희한한 꿈이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법당 안에서 잉어 꿈을 꾸고 나서 얼마 뒤에 임신을 하고 달을 채워 아들을 낳았다. 어머니는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 막둥이도 여섯 살을 못 넘길까 걱정 됐지만 꿈에서 관세음보살이 점지해준 자식이니 불보살이 보호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에 기도를 올렸다. 새벽마다 정안수를 올린 뒤에 손을 비비면서 하염없이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관세음보살님! 부디 우리 아들 건강히 자라게 해주시고, 하는 일 모두 다 잘 풀리게 해주십시오. 그저 우리 아들 건강하고 잘 되게 해주십시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오직 아들이 잘되기만을 빌었다.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던 분이었다.

어머니 나이가 40대 즈음, 아들의 나이가 일곱 살쯤 때였다. 어머니 젖가슴에 큰 혹이 자랐다. 지금 생각하니 유방암이었던 것 같다. 병원 없던 시골 마을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시신을 방 안 한구석에 두고 장례 준비를 하러 나갔고 어린 아들은 차가워진 어머니 품에서 엄마 몸을 주무르며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숨이 끊긴 뒤였다. 어머니는 꿈을 꾸었다. 멍하니 저승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걷다 고개를 넘으려는데 갑자기 왕관을 쓴 보살님이 나타났다.

“어디 가느냐?”

왕관 쓴 보살님을 쳐다보니 하얀 닭을 안고 계셨다. 보살님이 닭을 어머니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이 닭을 놓치지 말고 잘 갖고 있어라.”

어머니는 얼떨결에 닭을 받았다. 가슴에 안은 닭이 갑자기 부리로 어머니의 젖가슴을 마구 쪼아댔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지만 놓지 말라 했기에 꾹 참고 닭을 계속 안고 있었다. 젖가슴을 마구 쪼던 닭이 갑자기 어머니의 목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꼬끼요!”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머니는 눈을 번쩍 떴다. 멀리서 아들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이 옆에서 목이 찢어지게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 아들 두고 이대로 갈 순 없다. 이대로 갈 순 없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정신을 차렸다. 마을에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고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약초를 찧어서 가슴에 발랐다. 민간치료였다. 며칠 후였다. 혹이 난 한쪽 가슴이 저절로 터져버렸다. 터진 가슴에서 피고름이 줄줄 쏟아졌다. 그리고는 병이 완전히 자연 치유되었다. 40대 후반 죽을 고비를 넘긴 어머니는 그 후로 평생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103세까지 사셨다. 살아 생 전 어머니의 가슴을 보면 한쪽 가슴이 완전히 일그러졌고 찢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어머니는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들은 너무 가난해서 학교조차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아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관세음보살이 점지해준 아들이다. 관세음보살님이 분명히 도와주실 것이다. 난 반드시 성공하고, 어머니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아들은 사회에 나가 그저 열심히 살았다. 성실하게 살았다. 아들은 자수성가하였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였고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아내는 나라에서 주는 훈장까지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님의 정성과 헌신이었고 불보살님의 가피였다.

추운 겨울 한 새벽에 정안수 떠놓고 오직 아들만을 위하여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염불하던 그 모습이 늙은 아들 눈에는 아직도 선하다. 거사님이 울면서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지금 들려드린 이야기는 결코 거짓 없이 모두 어머니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부디 불자 분들에게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계시고 관세음보살님은 분명히 계십니다. 불보살님의 가피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우리 어머님입니다.”

광우 스님 마음수행법회 지도법사 kgk515@hanmail.net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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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불자 2020-01-10 10:36:04
나무관세음보살

상월심 2020-01-07 11:07:35
스님()
법보신문 연재 축하합니다^^()
오늘부터 저는 폰에 ARS 법보신문을 추가합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ARS 한통 눌렀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김영미 2020-01-06 14:12:54
광우스님 소나무에서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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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입니다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