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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정론-경제청문회에 비친 세상

기자명 찬승세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경제청문회'가 한창이다. 나라의 경제를 망가뜨린 죄목으로 청문회장에불려나온 증인들은 너더분한 흰소리를 앙잘거리며 면죄의 구실 만들기에 혈안이고, 신문하는 국회의원들은 증인들의 요살스러운 임기응변술에 경악하며 말문이 막힌다. 허명무실 해서 우두망찰 혼줄이 빠지는 쪽은 오히려 신문하는 국회의원들이요, 증인들은 번주그레 야릇한 웃음끼마저 흘리면서 이죽이죽 느물거린다. 처지가 뒤바뀌어도 이쯤 맹랑할 수가 없다.

한 해 남짓만에 별안간 판을 바꾼 물정과 생소한 나라 사정 탓 일 것이다. 입 달린 사람이면 모두, 그리고 알 '식(識)'자를 어지간히 익힌 지식인들태반도, "언제부터 나라 꼴이 이렇게 됐지?" "세상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됐담!" 하는 볼멘 투정들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하다 싶은 이런 탄식들도 따져보면 심각한 착각의 소산임을 금새 깨달을 수 있다. 나라의 위상과 체면이 국제적으로 실추 될 요인은 '언제부터'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상존 했었고, 세상이 살맛없이 흉흉해 질 밑바탕 까닭은 '어쩌다가'가 아니라 '마땅히'있어왔던 것이다. 좀더 꾸밈없이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세상은 어차피 사람들이 꾸려가는 것이기에, 어떤 세상이(나라라 해도 흠될 게 없다) 망쪼들었다는 사실은 곧 그 세상 사람들의 '정신'이 먼저 망조들어 있었다는 피치 못할 당위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당위적 전제를 놓고 요즘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볼 때마다 사회비평의 세계적 석학 '에리히 프롬'의 경구(警句)를 곱씹게 된다. 그는 앞뒤 잔사설은 미련없이 잘라내버리고 촌철살 인격의 사회진단법을 내놓았었는데,"부강한 나라·건전한 사회의 자산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것은 '생산적 성격형'의 국민이 많다는 것이다"라고 갈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생산적 성격형'의 인간은 역사적 신의를 추구하고 '비생산적 성격형'의 인간은 시대적명리를 위해 한없이 자기능력을 소비한다고 못박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나라 사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인가. 마치 요즘우리나라의 세상 돼가는 꼴을 미리 훤히 내다본 뒤 예언이라도 한 것 같아모골이 송연 할 지경이다. 굳이 '아이 엠 에프'사태만을 언턱거리 삼아 망징폐조의 현실을 건성으로 덮을 일도 아니요 피치못할 경제적 요인에다만 국난의 원인을 떠넘기며 미적미적 넘어 갈 일도 아니다. 설령 '아이 엠 에프'사태가 터지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명리(名利)에 눈이 먼 '비생산적 성격형'인간들이 전문분야의 요직을 도맡아 사회를 관장하며 가치체계의 유기적 질서를 훼방놓는 한, 경제대란 보다 더욱 참담한 정신적 대공황의 불씨는 밑질기게 타오르고 있었던 까닭이다.

한 나라가 부강하려면 우선 그 사회가 건전해야 함은 자명한 이치이다.따라서 사회가 건전하려면 시대적 명성(名聲) 보다 역사적 신망(信望)을 더욱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떨치기 위해 제 정신을잃고 분망히 거덕치는 사람들이, 사회의 구석구석 삶의 굽도리 굽도리를 밟고 싸바르며, 깔리고 널렸다. 이름 석 자를 세상에다 널리 떨치는 일이야 오죽 장하고 값질까만, 명성에 대한 탐욕은 거지반이 명리에다 끈을 댄다는게 탈이다. 좋은 명성도 있을 것이로되, 큰 도적놈도, 큰 사기꾼도, 흉악한살인마도, 못된 정치꾼도, 제 배때지만 채우는 인면수심의 장사꾼도, 사이비종교인도, 뱃속 검은 교육자도 ― 모두들 이름 석 자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는가. 예술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질미달의 예술인들이 타래묶음으로 양산되어, 이름 석 자 알리겠다며 사면팔방 황망히 분주살떨며 '문화걸인'떼거리를 짠다. 이렇듯 세상 통속이 '비생산적 성격형' 인간들로 옥작복작들끓어댔으려든 경제대란은 고사하고 무슨 일이든 안일어나고 배겼겠던가.

더 봐야 속만 쓰려울 것 ― 청문회 화면을 끄고 돌아앉으니 '명예와 이익'때문에 사기죄로 고소당한 어떤 승려의 소식도 눈에 들어온다. 신문활자를잘 못 읽은 노안(老眼) 탓이라 자위하고 싶다. 그러게 말이다, 그놈의 명리가 무엇인지. 깊고 넓은 법리(法理)로 진성(眞性) 수행해도 모자랄 경각세월인데.


천승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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