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남짓만에 별안간 판을 바꾼 물정과 생소한 나라 사정 탓 일 것이다. 입 달린 사람이면 모두, 그리고 알 '식(識)'자를 어지간히 익힌 지식인들태반도, "언제부터 나라 꼴이 이렇게 됐지?" "세상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됐담!" 하는 볼멘 투정들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하다 싶은 이런 탄식들도 따져보면 심각한 착각의 소산임을 금새 깨달을 수 있다. 나라의 위상과 체면이 국제적으로 실추 될 요인은 '언제부터'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상존 했었고, 세상이 살맛없이 흉흉해 질 밑바탕 까닭은 '어쩌다가'가 아니라 '마땅히'있어왔던 것이다. 좀더 꾸밈없이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세상은 어차피 사람들이 꾸려가는 것이기에, 어떤 세상이(나라라 해도 흠될 게 없다) 망쪼들었다는 사실은 곧 그 세상 사람들의 '정신'이 먼저 망조들어 있었다는 피치 못할 당위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당위적 전제를 놓고 요즘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볼 때마다 사회비평의 세계적 석학 '에리히 프롬'의 경구(警句)를 곱씹게 된다. 그는 앞뒤 잔사설은 미련없이 잘라내버리고 촌철살 인격의 사회진단법을 내놓았었는데,"부강한 나라·건전한 사회의 자산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것은 '생산적 성격형'의 국민이 많다는 것이다"라고 갈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생산적 성격형'의 인간은 역사적 신의를 추구하고 '비생산적 성격형'의 인간은 시대적명리를 위해 한없이 자기능력을 소비한다고 못박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나라 사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인가. 마치 요즘우리나라의 세상 돼가는 꼴을 미리 훤히 내다본 뒤 예언이라도 한 것 같아모골이 송연 할 지경이다. 굳이 '아이 엠 에프'사태만을 언턱거리 삼아 망징폐조의 현실을 건성으로 덮을 일도 아니요 피치못할 경제적 요인에다만 국난의 원인을 떠넘기며 미적미적 넘어 갈 일도 아니다. 설령 '아이 엠 에프'사태가 터지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명리(名利)에 눈이 먼 '비생산적 성격형'인간들이 전문분야의 요직을 도맡아 사회를 관장하며 가치체계의 유기적 질서를 훼방놓는 한, 경제대란 보다 더욱 참담한 정신적 대공황의 불씨는 밑질기게 타오르고 있었던 까닭이다.
한 나라가 부강하려면 우선 그 사회가 건전해야 함은 자명한 이치이다.따라서 사회가 건전하려면 시대적 명성(名聲) 보다 역사적 신망(信望)을 더욱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떨치기 위해 제 정신을잃고 분망히 거덕치는 사람들이, 사회의 구석구석 삶의 굽도리 굽도리를 밟고 싸바르며, 깔리고 널렸다. 이름 석 자를 세상에다 널리 떨치는 일이야 오죽 장하고 값질까만, 명성에 대한 탐욕은 거지반이 명리에다 끈을 댄다는게 탈이다. 좋은 명성도 있을 것이로되, 큰 도적놈도, 큰 사기꾼도, 흉악한살인마도, 못된 정치꾼도, 제 배때지만 채우는 인면수심의 장사꾼도, 사이비종교인도, 뱃속 검은 교육자도 ― 모두들 이름 석 자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는가. 예술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질미달의 예술인들이 타래묶음으로 양산되어, 이름 석 자 알리겠다며 사면팔방 황망히 분주살떨며 '문화걸인'떼거리를 짠다. 이렇듯 세상 통속이 '비생산적 성격형' 인간들로 옥작복작들끓어댔으려든 경제대란은 고사하고 무슨 일이든 안일어나고 배겼겠던가.
더 봐야 속만 쓰려울 것 ― 청문회 화면을 끄고 돌아앉으니 '명예와 이익'때문에 사기죄로 고소당한 어떤 승려의 소식도 눈에 들어온다. 신문활자를잘 못 읽은 노안(老眼) 탓이라 자위하고 싶다. 그러게 말이다, 그놈의 명리가 무엇인지. 깊고 넓은 법리(法理)로 진성(眞性) 수행해도 모자랄 경각세월인데.
천승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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