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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상(四相)과 9상(九相)

기자명 현진 스님

불교의 ‘무아’ 체득 위해 극복해야 할 것들

구마라집 번역본엔 4상만 존재
현장스님 번역본에 5상 추가돼
사부·의생·작자·마납파·수자상 
결국엔 제2·제3의 아상 언급해

우리가 흔히 읽는 ‘금강경’의 구마라집 스님 한문 번역본엔 아・인・중생・수자(我・人・衆生・壽者)의 4상이 언급되어 있으며, 전해지는 주요 범어판본 역시 인상(人相)의 순서만 제일 나중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4상만인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현전하는 ‘금강경’의 현장 스님 번역본은 거기에 5상이 더해져 9상으로 되어 있으며, ‘대반야경’ 등에도 9상을 언급하고 있다. 더해진 5상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부상(士夫想, puruṣa­saṁjñā)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사람, 즉 근본인간(puruṣa)이 고정불변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범어 뿌루사(puruṣa)는 보통명사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한편 고유명사로 ‘영원불멸의 근본인간’이라는 개념으로 인도의 고대문헌인 리그베다(ṛgveda)와 까타(kathā)우빠니샤드 등에 등장한다. 흔히 순수하게 인도사상을 다룰 때는 뿌루사를 한문으로 원인(原人)이라 번역하는데, 중국불교에선 인도사상에서 강조하는 원래의 의미를 다소 약화시키고자 단순히 남자를 가리키는 말인 사부(士夫)를 그 번역어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뿌루사는 인도사상에서 핵심술어의 하나로서 베다뿐만이 아니라 그 후의 상캬학파에서도 뿌루사와 쁘라끄르띠라는 이원론의 한 축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등 그 의미와 역사는 매우 깊다.

의생상(意生想, manomaya­saṁjñā)은 마음[manas]으로 이루어진[­maya] 어떤 것이 고정불변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사실 인도사상에서 말하는 마나스(manas)는 우리말의 ‘마음’과는 사뭇 다르게 사용된다. 마나스는 ‘마음’보다는 ‘생각’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생각’ 그 자체도 아닌, ‘사고능력에 의해 생성된 정신적인 결과물’ 정도로서 느야야학파에 의하면 일종의 본질적인 물질로 간주된다. 그래서 의생상은 ‘사고능력에 의해 생성된 정신적인 결과물로 이루어진 그 어떤 것이 고정불변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인도의 전통사상이 거의 수동적인데 반해 능동적인 색체를 지니고 있다.

마납파상(摩納婆想, māṇava­saṁjñā)은 ‘마나와’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마나와는 보통명사로서 ‘결혼하지 않은 브라만 출신의 젊은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흡사 브라만교의 아뜨만처럼 힌두교의 비슈누파에서 궁극적인 자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도 쓰인다.

작자상(作者想, kartṛ­saṁjñā)은 모든 행위에 있어 그 행위를 주재하는 행위자가 고정불변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인도 논리학에서 어떤 행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행위를 하는 행위자(kartṛ)와 행위의 도구(karaṇa)와 행위 그 자체(karma) 및 행위의 결과(kārya) 등 네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이 가운데 행위자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간주한 것인데, 불교에선 행위자라는 것이 단지 오온(五蘊)이 임시로 뭉쳐있는 것일 뿐이므로 실체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자상(受者想, bhoktṛ­saṁjñā)은 모든 행위의 결과나 대상을 즐기는 어떤 존재[boktṛ]가 고정불변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이는 ‘바가왓기따’에서 언급되는 등 인도철학에서 고대부터 중요한 술어로 사용되어왔다.

사부상부터 수자상까지의 다섯 가지 상 또한 어차피 아상(ātma­saṁjñā)의 변형일 뿐이다. 그저 오랜 역사는 비슷하지만 그리 발전되지 못한 사상이거나 혹은 나중에 설립된 교파나 학파에 의해 새롭게 주장된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장 스님이 9상을 나열할 때 사부상(士夫相)을 인상(人相)보다 앞에 놓았는데, 베다시기부터 있어왔던 사부상이 불교의 독자부에 의해 주장된 인상보단 아무래도 당시 민중들의 뇌리에 더 깊이 인식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4상이든 9상이든 어차피 모두 제2 제3의 아상일 뿐이며 그 모든 것들은 ‘금강경’ 저술 당시에 민중의 뇌리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이기에 불교 가르침의 기반인 무아(無我)를 체득하기 위해선 극복해야 될 생각들이었다. 이런 상황이 당시에만 국한되었던 일일지 지금도 그럴지는 또 살펴봐야겠지만.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28호 / 2020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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