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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당선작] 뇌병변 장애인 마음 열어주고 손과 발 되어준 도반들

기자명 법보

중앙신도회장상 - 이경남

출생 때 난산으로 인해 머리에 큰 압력 받아 선천적 장애 가져
청량사 스님·불자 등 도움으로 ‘보리수 아래’서 활발하게 신행
휠체어 장애인 해외성지순례…스님과 함께 템플스테이도 체험

그림=육순호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님을 운구차에 모시고 벽제승화원 납골당으로 가면서 미약하게 스님의 독경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장례운구차량이라 일부러 독경을 들려주나 싶어 주위를 들러보고 여쭤 봐도 그러한 일은 없었고 그 소리는 화장을 마치고 납골당에 안치하기 위하여 가기 까지 귓가를 맴돌았다. 일찌기 어머니께서 절과 인연을 맺어 어릴 적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소풍삼아 놀러가는 느낌으로 절에 가곤했다. 사실 불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일년에 두어 번 큰 행사에만 사찰에 가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래도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게 되면 사찰이 주는 분위기와 바람에 부딪혀 잔잔하게 들리는 풍경소리가 편안함을 준다고 느끼곤 했다.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인해 경제적 사정이 악화되면서 차츰 절에 가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었다. 사실 나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출생 때 난산으로 인해 머리에 압력을 받아 장애를 갖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히려 장애에 대한 의식 없이 커 왔으나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으나 당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좋지 않은 편견이 가득한 시대였다. 부딪치는 모든 상황들에 갈등을 갖게 되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결과는 큰 상처가 되어 가슴 속에 옹이가 되어 쌓여갔다.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힘들어지면서 문득 어렸을 때 절에서 느꼈던 그 안온한 감정이 그리워져 사찰을 찾고 싶었으나 당시에는 장애에 대한 일반적인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한번 사찰에 가는 자체만 하더라도 큰 용기를 내야 할 만큼 여의치 않았다. 우연히 신문에서 뇌병변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내용에 표현된 여러가지 증세가 나의 상태와 같다고 느껴 지면에 소개된 뇌성마비복지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장애인, 그러니까 뇌병변 장애인을 직접 접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사지가 뒤틀리며 걷는 친구, 얼굴이 일그러지며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친구, 지능적 문제가 있는 친구 등 처음 접해보는 모습들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88서울올림픽이 확정되고 함께 열리는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 준비과정으로 직업훈련과 재활치료 시설을 겸비한 국립재활원에서 뇌병변 장애인인은 물론 다른 부류의 장애인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도 가끔씩 찾아드는 공허감과 무력감은 나를 힘들게 했다. 다행히 재활원 근처에 작은 절이 있어 가끔씩 올리는 삼배와 정근 기도로 작은 위안을 삼았다. 함께 했던 친구는 거의 매일 그곳 사찰을 가서 마당을 쓸곤 하였는데 사실 그 친구의 행동에 큰 느낌을 받았으나 정작 나는 주위의 시선들이 걸리어 마음과 달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만 되뇌고 있었다. 일반 재활원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일년여 동안 직업훈련을 받고 수료를 하였으나 역시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과 제약으로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배운 기능과 연관되어 우연히 한 지인을 만나게 되어 그 인연으로 경기도 오도선원에 기거하게 되면서 주지 스님께 ‘초발심자경문’과 경전공부 등 불교의 교리를 접하면서 모든 것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인과법의 가르침과 그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전생에 지은 인연 공덕이 짧은 탓인지 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어 결국 사찰에서의 생활과 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선원에 머무르며 고요함이 주는 청량감과 맑은 도량이 내어주는 정서적 평안, 일년여 동안 스님의 말씀과 경전의 가르침들이 시나브로 긍정적 사고를 갖게 해 주며 삶의 자양분이 되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끝내버린 모든 상황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처음부터 몰랐으면 그에 대한 갈증도 없었겠지만 잠깐 동안이나마 접했던 느낌에 뭔지 모를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사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불교방송 청취와 관련된 책자를 통해 부족한 가운데 불교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정도였다. 당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특히나 절에 다니시는 분들의 인식은 오히려 잘못된 의식을 갖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불교를 접하고자 했던 마음까지 반감이 되어 결국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안타까움을 접하게 되었다.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도 사찰을 편하게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불자와 스님들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 돌릴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을 느끼던 가운데 오랫동안 교분을 갖고 있던 최명숙 씨의 주관과 당시 청량사 주지 스님의 도움으로 ‘보리수 아래’란 이름의 장애인 불자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막상 결성을 했으나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시인으로서도 여러 활동을 하며 보리수 아래  회장의 제안으로 장애인들이 평소 쓰고 있는 글들을 매개로 활동하며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가기로 마음먹었다. 집에서 소일하던 장애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기 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 신심이 있는 사람과 또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섞이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갈등도 일어났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사찰 방문과 스님 초청법문, 자작시 발표 등 활동을 월 1회 정기모임과 사이버 공간인 카페를 활용하여 온라인을 통한 홍보와 포교 등 교류를 꾸준히 가졌다.

한번 엎드려 절하기도 힘에 겨운 우리들은 청량사 약사여래불 아래,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한배 또 한배 108배를 시작했고 자유롭지 못한 팔다리는 점점 경직되어 가고 서서히 느껴지는 허리의 통증에 온몸은 비에 맞은 듯 땀범벅이지만 누구 하나 멈춤 없이 마지막 108번째의 절을 마치면서 큰 환희심이 피어나고 있었다. 비록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스님과 함께 행했던 삼보일배는 그동안 행해보지 못했던 수행으로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눈물로 벅차올랐다. 불교tv와 불교방송 등 각 불교 매체에 소개되면서 조계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들에서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을 설치하는 등 관심을 가져 조계종 장애인 전법단이 발족되고 부족한 글이나마 축시 낭송을 하는 영광을 안았다.

보리수 아래에서 행해지는 작은 일들은 점점 파급되어 2015년 승가대학생회와 연결되어 승가대 학내 행사 참여와 함께 승가대 스님과 장애인이 일대일로 매칭되어 마곡사에서 가진 템플스테이에서 전개된 모든 일들은 나에게 또 다른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손과 발이 불편해 밥 수발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손이 되어 함께 공양을 들며 먹여주는 모습, 걷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등을 내어 주시던 스님 등 이제까지 보아온 스님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스님과 일반인이 일대일이 되어 한 침소에 들수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마곡사 템플스테이에서는 첫 출발 때부터 장애인 한 명과 승가대 스님 한 분이 짝이 되어 처음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일정을 같이하며 잠자는 방까지 함께 했다. 사찰 밖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며 스님의 모습을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허물없는 담론을 주고받으면서 종전에 갖고 있던 스님들에 대한 거리감이 사라졌다. 

보리수 아래에서 행한 많은 수행들은 널리 홍보되어 마침내 단체 최초로 휠체어 장애인을 포함한 중증 장애인 외국성지순례와 외국인 장애인 시인을 초대하여 함께 하는 시 낭송 발표회에 이어 공동시집 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보리수 아래 모임이 꾸준히 발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된 것은 개인적 어려움에도 동분서주 늘 앞장서 솔선하는 회장의 큰 원력의 힘과 회원들의 부처님을 향한 작은 마음들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발현하신 부처님의 가피력이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개인을 위한 발원이 아닌 모두를 위한 발원이었기에 부처님께서 더욱더 잘 지켜보고 계셨으리라 믿는다.

나에게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다. 아버님이 2월 초 세연을 다하셨다. 아버님은 99세, 어머님은 95세 사람들에게 먼저 아버님이 99세라 하면 한번 놀라고 또 어머님이 95세로 생존해 계신다면 두 번 놀란다. 지난 날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부모님이 당신 걱정 때문에 쉽게 돌아가지 않으실 것 같다고. 그 말은 나의 명치끝에 항상 걸려 가슴을 누르는 큰 바위가 되곤 했다.
돌아가시기 직전 많이 쇠약해진 아버님은 하루하루를  너무 힘들어하셨고 용변 처리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푸념 섞인 말을 하곤 했다. “이제 그만”이란 황망한 생각이 불쑥 일어 그때마다 아버님 머리 맡에 ‘지장경’을 올려드리곤 하였다. 그러던 중 아버님께서 갑자기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향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결핵으로 판정되어 감압실에 격리조치 되고 같이 기거했던 식구들 모두 전염 여부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감염자는 전혀 없었고 아버님은 감압실에서 2주 치료 를 받은 후 일반실로 옮겨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로 넘어가 폐렴이 일어났다고 하는 의료진의 얘기를 듣고 퇴원 준비를 하던 식구들은 다시 맥을 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염불뿐이었다. 나는 병상에 다가가 아버님 손을 잡으며 다시 한 번 지장보살을 수차례 염하고 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염송하며 아버님의 부어있는 손을 꼭 잡고 나의 작은 기도로 아버님께서 편안하시기를 염했다. 집으로 돌아와 지장보살을 염송하며 밤을 지샌 어느 날 아침, 아버님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허겁지겁 병원으로 가면서 다시 한 번 지장보살을 찾았고 처치실로 옮겨진 아버님의 손에는 아직 희미하게 체온이 남아 있었다. 주무시듯 편안한 모습에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올렸다. 지장보살을 염송하며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나무 지장보살, 나무 지장보살,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1540호 / 2020년 6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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