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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옳음을 주장하기 위한 조건

기자명 우봉 스님

가끔 인간의 지성에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해석이 정반대이거나 분분함을 볼 때가 그렇다. 각자의 입장과 소양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똑같은 견해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없는 이유도 동일하다. 보다 객관적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완전한 객관’은 관념에서나 존재할 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옳을 수 없으며 너는 항상 나쁠 수 없다.

우리가 객관적이고 옳은 논리를 주장하기보다 차라리 “나의 말에는 나의 욕구와 나의 한계가 명백히 반영되어 있다.” “나의 생각에는 분명히 편견이 있을 것이다”라며 오류가능성을 열어놓는 편이 더 솔직하고 더 객관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오류가능성을 열어놓으셨다. 경전 첫머리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는 말은 제자 스스로 인지와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이다. 따라서 상대는 비판의 자유를 부여받게 된다. 수천 년 불교사에는 치열한 논쟁이 가득하고 인도와 중국의 고대사상은 불교와의 논쟁을 통해 통합된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불교의 열린 자세가 자유로운 논쟁과 교류를 가능하게 하였고 세상을 발전시켰다고 본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함량미달일 수 있음을 전제한다면 논쟁은 발전으로 승화하고 다름은 융합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옳다는 확신은 대단히 위험하다. 수많은 전쟁과 학살을 낳은 인류사의 비극들은 절대선에 대한 확신, 다른 말로 ‘독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독선들이 종교, 이데올로기,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사람들을 왜곡시키고 문명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욕칠정에 지배당하는 업장중생의 동기는 아마도 고만고만할 것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화려한 논리가 자신의 욕구를 포장하기 위한 도구(도구적 이성)일 뿐인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면 차라리 범부(凡夫)의 동기가 더 순수하게 보인다. 아마도 중생들은 오욕칠정의 욕구와 동기에서 평등하리라. 그리고 그 동기들은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어떤 사람의 어떤 행동에는 그 사람의 고민과 노력이 깃들여있으니 가볍게 평가하면 안 될 일이다.

여기까지의 주장으로 보면 세상은 옳고 그름의 구분이 모호한 혼돈의 상태가 오히려 당연하다고 말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다행인 점은 세상에 절대 해악만 주는 것들은 모두 제거되면서 인류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제도, 관습, 질서는 뭔가 긍정적인 면이 있어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악들을 점점 걸러내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겸허하고 타인에게 열려있다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저절로 발전할 것이다.

혹시 ‘나의 말은 반드시 옳다’라고 주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최소한의 기준을 살펴보기 바란다.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 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나만 좋으면 이기적일 것이요, 너만 좋으면 나는 억울할 것이다. 너와 나만 좋으면 야합한 것이다. 너나 나를 제외한 모두가 좋다면 아마도 너나 나는 희생자일 것이다. 

사바세계에서 조화롭게 화합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건 이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씩 그러한 세상으로 발전했지 않은가. 세상이 발전하고 평화로워지는 데 큰 공헌을 하진 못해도 해는 끼치지 말자. 내가 옳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견제하자.

우봉 스님 서울 호압사 주지 wooborn@hanmail.net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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