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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蓮史) 홍윤식 교수님을 애도하며

기자명 효탄 스님

막막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은사 홍윤식(洪潤植) 교수님의 병환을 듣고 찾아갔지만, 병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부고를 접하고 말았다. 급히 달려가니 예전의 적막감은 어디로 가고 장례식장은 많은 조문객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 접촉이 강조되는 요즈음이다. 특히나 병원, 장례식장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꺼리는 일들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장례식장은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이들로 가득한 것이다. 아! 홍교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도 정을 많이 뿌리고 다니셨구나! 하는 가벼운 탄식과 함께 끓어오르는 슬픔을 주체키 어려웠다. 순간 부처님의 입멸을 맞이하여 슬피 울던 그 많은 제자들이 생각났다. 성지에 가면 반드시 접하게 되는 열반상이 떠오른 것이다. 초재를 지낸 뒤 유가족들의 주선으로 연사회(蓮史會) 회원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분들의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이 또한 다른 분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이었다.

교수님은 에너지가 참으로 많으신 분이셨다. 그 분의 학문적 업적과 그 실천을 보면 그 넓이와 깊이에 다시금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교수님의 주요 업적을 꼽는다면 고려불화전 개최, 성보보존위원회 발족, 불교미술공모전 개최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교수님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불교 무형문화유산을 정착시킨 개척자였다. 산실 위기에 처한 범패를 발굴해 60년 무형문화재 등재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후 유형문화재에 한정돼 있던 불교문화유산의 영역을 영산재, 수륙재 등 불교의례(佛敎儀禮)로 확장시켰다. 더 나아가 이 무형의 불교문화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도록 심혈을 기울이셨다. 내가 종단에 문화부장으로 있었을 때, 실로 곳곳에 교수님의 자취가 있음을 느끼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제자로서 부끄러움이 많았다. 그때 교수님은 수륙재와 연등회를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 하기 위해 앞장서고 계셨다. 당시 우리들이 불교무형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주춤거릴 때 매우 안타까워하시면서 동분서주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항상 많은 일들을 기획하시고 골몰하시던 분이셨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제자들을 챙겨주시는 따뜻한 분이셨다.

개인적으로 내가 종단 내외적 여파로 갈등을 겪고 어려워 할 때, 교수님은 내게 선뜻 일본 유학을 추천해 주셨다. 그때 만해도 나는 선과 정토, 그리고 천태, 유식 등 많은 불교사상의 천착에 골몰하고 있었다. 나아가 선과 정토의 접합점은 무엇일까, 자력적인 선에서 타력적인 정토신앙이 교리적으로 어떻게 수용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 화두였다. 일본에서 연구하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고 오래된 의문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답이 귀국 후 1996년 학회지에 실은 ‘선원청규와 칙수백장청규의 망승조에 관한 고찰’이었다. 그 이후에도 물론 선사상과 한국불교사에 관한 학문적 천착은 계속 이어졌지만, 내 숙제를 마친 뒤에야 교수님의 불교문화에 대한 열정과 이해를 같이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은 늦된 제자를 그렇게 말없이 지켜봐 주신 분이셨다.       
홍교수님은 불교문화에 대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긍심과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어떻게 생전에 그 많은 일들을 해내실 수 있었을까? 이 시대 몇 안 되는 선각자임을 돌아가시고 나서야 절감한다. 최근에는 끊긴 줄만 알았던 땅설법의 전승을 함께 기뻐해주시고 인정해 주셨다. ‘조금 더 사셨다면 그 결실도 거둬주셨을 터인데…’하는 아쉬움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일본판 ‘한국불교의례연구’가 번역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곳에서 많은 보물들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교수님께 간절히 묻고 싶다. 교수님은 후회 없이 생을 마감하셨다고 자부하십니까?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십니까? 교수님께서는 너무나도 많은 분야에 씨앗을 뿌리시고 인연도 심으셨으니 그 대답은 이제 온전히 우리의 몫이 아닐까 한다.

효탄 스님 조계종 성보문화재위원 hyotan55@hanmail.net

 

[1542호 / 2020년 6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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