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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정성을 들이는 이유

기자명 금해 스님

인연도 인생도 이순간 전부 아냐
순간이 전부 아니기에 마지막까지
정성들이고 노력하며 지켜봐야

발심하자마자 바로 출가한 행자는 불교 공부 하는 수요일이 제일 즐겁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일과 속에서 수요일만 기다린다고 하니,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연기법과 ‘모든 것이 변한다’는 주제의 강의를 듣고, 사는 것이 참으로 허무한 것이 아닌가 하며 묻습니다. 

“어제 강의 들은 신도님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억울할 것 같습니다. 결혼이나 자녀, 사랑의 약속들 모두 변하고 덧없는 것이니 허무할 것 같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그래서 다음 시간 강의를 꼭 들어야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의 강의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강의 뿐 아니라 글이나 책, 대화, 편지 등 우리가 접하는 것은 한 부분에 맞추어서 펼쳐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만 이해할 뿐입니다. 

불법에 관한 법문이나 강의는 더욱 그렇습니다.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법이 서로 대비되고, 중생들에 따라서도 각각 다르게 설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근기에 따라 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어느 시골 할아버지가 손자의 초청으로 독립군에 관한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손자는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 연극을 매우 뜻깊게 보시리라 생각했지요. 

연극의 2막 중반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흥분해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인 ‘독립군’ 청년이 조선인 첩자에 의해 붙잡혀서 고문당하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는 절정이었습니다. 조선인 첩자가 등장하자,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들고 “저, 때려죽일 놈!” 하며 무대 위로 뛰어오를 기세였지요. 손자가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마침내 연극이 중단되고 감독이 나와서 할아버지를 달랬습니다.

“어르신, 마지막 장인 4막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끝나고 나서 저 첩자를 여기로 끌고 오겠습니다.”

연극이 이어지고, 3막에서 첩자는 군중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마지막 4막이 끝날 때까지, 독립군 청년은 살아남아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연극의 결말에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론을 내리기전에 의도가 무엇이지를 충분히 알고, 확인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니 법문이나 강의, 책, 글의 일부분을 보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과의 인연도, 우리들의 인생도 이 순간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순간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짧은 말이나 글이 우리 개개인의 별업(別業)에 다 통하지도 않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 강의에는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서로를 지키는 사랑,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념의 사람들을 고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이유’라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다음 강의를 듣는 이들은 허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참된 존재로 수행하려 애쓸 것입니다. 

금해 스님

법문이든 수행이든, 또는 인생과 인연, 그 무엇이든 마지막 장의 막이 내릴 때까지 오래오래 정성을 들여 노력하며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에 서서, 가장 고귀한 열매를 두
손에 거두시길 바랍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542호 / 2020년 6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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