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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수행 김신희 (53) - 하

기자명 법보

사경 보시 기뻐한 아버지에
‘반야심경’은 삶의 이정표 
사경은 효도 이끌어준 가피

김신희

아버지의 정성과 열정으로 완성된 반야심경 병풍은 어머니의 제사를 모시는 남동생에게 가보로 전해졌다. 동생이 병풍을 차에 실어가던 날, 자동차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의 그 뭉클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다. 한 자 한 자에 깃든 아버지의 노고와 정성을 떠올리며 존경심으로 충만해진 순간이었다. 이번 기제사 때는 저세상 어머니께서 얼마나 행복해하실지 얼마나 고마워하실지, 또 오히려 아버지께서 더 행복해하실 상상을 하니 그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아버지의 서예 선생님께서도 불과 4개월 동안 배우고 쓴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다며 큰 격려를 보내 주셨다. 연로하신 나이에 지병도 있으신 아버지께서 이렇게 반야심경을 쓰고 회향하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까. 신기하게도 아버지께서 한 편을 완성해서 회향하시면 또 한 편을 보낼 곳이 나타났다. 보시한 곳마다 사연도 들려왔다. 족자 하나가 포교의 길이 될 수 있음에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이제 코로나19는 아버지께 일부 뉴스 보도 내용일 뿐 아무런 영향력 없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나 또한 반야심경이라는 좋은 경으로 만들어진 아버지의 작품을 휴대폰에 저장해서 가는 곳마다 자랑하고 다닌다. 아버지께 우울한 세상을 이겨내게끔 알려드린 지혜가 반야심경이었고, 부처님께 자식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경전이라는 점에서 새삼 이런 인연이 이어질 수 있었던 모든 것에 감사하다. 

반야심경의 핵심 주제는 ‘공(空)’이라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지족(知足)’을 지론으로 삼고 살아오셨다. 그런 아버지께 반야심경은 당신 삶의 이정표와 같은 경전이 되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초심자나 다름없기에 반야심경의 깊고 심오한 가르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누군가 반야심경이 어떤 경전인지 묻는다면 망설여진다. 감히 표현한다면 현재의 내게 있어 반야심경은 곧 분수를 아는 것, 욕심 없이 마음을 비우는 가르침이라고 본다.

삶에서도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는 과정들을 묵묵히 응원해야 하는데 여태껏 나의 욕심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일이 꼬이고 마음이 복잡할 때 반야심경을 읊조리려고 한다. 불같이 화가 일어나려 하다가도 반야심경을 외우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소연하고 헐뜯어봐야 소용이 없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면 해결 방법이 찾아지기도 했다. 앞으로도 반야심경의 깊은 뜻을 알기 위해 기도와 공부를 지속하고 싶다.

사실 절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욕망에서 시작된 간절함이었다. 만약 내 욕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면 기도를 통해 접하는 경전 속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버지께 이 현명한 지혜의 말씀을 제안할 수 있었을지 의구심마저 든다.

돌이켜보면 욕심을 비우는 이 길은 대광명사가 있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대광명사에서 배운 대로 2년 전부터는 재가 수행, 집에서도 기도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1월부터는 지장경을 포함해 나름의 기도문을 구성하고 매일 기도를 이어왔다. 천수경을 시작으로 지장경을 독송하고 마무리는 항상 반야심경으로 했다. 그렇게 1년 기도를 회향하고 최근에는 3일에 지장경 한 권을 회향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지속하고 있다. 지나온 시간의 기도 인연이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사경 수행에 바탕이 되었다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반야심경 사경은 부모님께 효도하게끔 부처님께서 인도해 주신 깨달음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둡고 다사다난한 일상이 희망과 긍정의 빛으로 조금씩 밝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의 기도가 또 다른 큰 가피와 지혜로 이어질 것만 같다. 오늘따라 극락보전에 모셔진 엄마 위패를 보니 기쁨과 따뜻한 미소가 마음속에 전해온다. 법당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의 평안마저 얻는다. 앞으로도 긍정적 생각, 좋은 생각으로 진정한 불자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늘 밝은 미소로 불자들을 대하시는 주지 목종 스님과 도량의 모든 인연에 감사드린다.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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