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라면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수행하는 이 산에서 깨우침을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1만2,000의 보살이 항상 설하고 있는 반야를 들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산 속의 높이 솟은 기이한 바위와 우거진 수풀 등 겉모습만을 볼뿐이니 그것이 임제(臨濟)의 참다운 가르침과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부디 한눈 팔지 말고 열심히 수행하라. 임제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 하였으며, 그대들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여 털끝만큼도 다른 모양을 찾을 수 없고, 또 털끝만큼도 같은 모양을 찾을 수 없다. 이미 불교문중의제자라면 같고 다른 것을 헤아려 무엇하겠는가. 다만 우리는 삿된 가르침을 버리고 임제의 정종(正宗)을 붙들어 일으키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임제의 정종을 어떻게 붙들어 일으킬 것인가. 심오한 가르침인 삼현(三玄)·삼요(三要)로 일으킬 것인가. 임제가 교화했던 방편인 사료간(四料簡)·사빈주(四賓主)·사할(四喝)로 붙들어 일으킬 것인가. 임제의 정종을 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가르침의 방편인 조용(照用)·사료간·사빈주·사할·삼현·삼요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우리의 본성에있을 뿐이다.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그 절대적 가르침은 하늘과 땅에 가득하지만 삼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니 그것은 오직 당사자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당장 깨닫지 못하기에 큰스님들이 부득이 무리한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스님이 임제종의 조주(趙州)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는 "없다"고 했다. 그 대답은 벌써 있는 그대로를 하나도 남김없이 드러낸 것이다. 단지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선사들은 부득이하나의 '무(無)'자를 가르치기 위해 사대(四大)·오온(五蘊)·육근(六根)·육진(六塵)과 나아가 모든 삼라만상을 '무(無)'의 개념으로 만들어 그것을 통해 깨달을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니거나 앉거나 눕거나 자거나 밥을 먹거나 항상 그 가르침을 지켜 어느 순간에 은산(銀山), 철벽(鐵壁)과도 같은 화두를 뚫고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이치가 저절로 풀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부모가 낳기 전의 면목도 알게 되고 사대(四大)가 흩어져 떨어지는 곳도 알게 되며, 설법을 통해 우리를 속인 것도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모두를 훤히 아는 것이 바로 임제의 정종을 붙들어 일으키는 때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간법과 불법에 조금도 틈이 없어 곧 삼현·삼요·사료간·사빈주·사할과 사대·오온·육근·육진·산하대지·삼라만상 등 모든 법이 다 임제의 정종임을 깨닫게 될 것이니, 그 때는 임제의 정종은 붙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때는 버려도 되고 세워도 되며 내가 법왕이 되어 보는 법에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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