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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고승들에게 배운다-⑥설봉

기자명 정병조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대오(大悟) 후에도 하심(下心)설봉 선사는 덕산의 사법제자였다. 당시 대부분의 선사들이 돈오입문(頓悟入門)을 강조해 온데 비해 그는 피나는 정진 끝에 대도를 이룬 인물로 전해온다. 물론 돈오돈수 또한 '정진'이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돈오의 순간만이 강조될 때 그 과정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이 점은 선종의 매력이자결점이다. 왜냐하면 중생이라면 누구나 돈오라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꿈꾸게 되고, 처절한 수행의 내면은 희석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설봉 스님의 전기에는 '삼도투자(三道投子) 구지동산(九至洞山)'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세번 투자산에 갔고, 아홉번 동산에 갔다"는 의미이다.

특히 아홉번 동산을 찾았다는 기록에는 숙연함마저 느낀다. 웬만하면 포기할 법도 하다. "인연이 덜 닿았다"는 독백과 함께 다른 길을 찾을 법도 하다. 그러나 설봉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은 이미 설봉의 인품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스님은 어느 모임에 가던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몸에 밥주걱을 지니고 다녔는데 그것은 대중공양의 취사소임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나이도 들고 수행경력도 붙었지만, 언제나 겸손했고 대중들이 싫어하는 노동일을 자처하였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주지나 큰스님들이 독상을 받는 풍조가 유행이다. 신호위반하는 순찰차를 보면 시민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질까? 발우공양이나 대중생활을 외면하는 스님들에게도 똑같은 심정을 지니게 된다. 사실 나이 먹어서 대중생활을 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심(下心)하는 일도 수행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한다. 설봉은 그 음덕(陰德)으로 대도(大道)를 이루었다.

사실 출가의 정신이란 희생과 겸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들에게 좋은 음식, 훌륭한 의복을 양보하고, 스스로는 거친 음식 남루한 분소의를 걸치겠다는 정신이다. 우리나라 스님들은 회색옷을 주로 입는다. 반면 일본이나 중국 스님들은 검정색이 주류이다. 한편 인도나 스리랑카, 태국 등지는 오렌지빛이나 자주색이다. 이 색깔은 그 특정지역에서 가장 혐오하는 괴색(壞色)이다. 즉 대중들이 싫어하는 것을 걸치는 마음이 곧 출가의 거룩한 정신이다. 그러나 이 청정한 정신도 세월 따라 퇴색하는 경우가 있다. 열심히 공부해봐야 알아주는 이도 없고, 공부가 깊을수록 성불은 멀어지게 느껴진다. 이때 수행자들은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래서 "흰구름을 벗하고 솔바람 소리에 취하는" 세속적 멋에 길들여지고 만다. 설봉 스님은 그와 같은 출가의 매너리즘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출
가정신이 빛났을 때 불교가 건강했고 나라가 튼튼했다. 반면 그 정신이 호도되었을 때 불교가 지리멸렬했고 나라 또한 멸망하지 않았던가

"세상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고 지도해 나가려면 모름지기 초인이 되어야 한다. 생명을 죽여야 할 경우에도 쓸데없이 망설여서는 안된다. 사람을 깨닫게 할 때에도 횡설수설해서 사람들을 혼돈시켜서는 안된다. 당장 불도(佛道)에 이르게 해야 한다. 도(道) 있는 이는 상대방의 능력에 따라 즉각 주고받고, 죽이고 살리고 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이 인용구는 '벽암록' 제5칙에 나오는 스님의 상당법문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그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수행에는 결코 요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분의 지론이었다. 즉 꾸준한 노력만이 왕도라는 것이다. 공부를 해 보면 끝내 완성을 이루는 이는 반드시 성실한 사람이다. 머리 좋은 사람도 요령 있는 이도 꾸준한 이에게는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설봉 스님이 대오를 이룬 것은 50세를 넘긴 때여서. 그의 문하에는 늘 1,500명의수행자가 몰려서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사십 여명을 상수제자로 꼽는데, 운문(雲門), 현사(玄沙)등이 당대를 뒤흔든 큰 인물들로 꼽힌다.


정병조 /동국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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