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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선사의 세상읽기-남녀 불평등 시대를 넘어

기자명 이재형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여성해방은 여성의 자각과 실천으로부터…
성 편협은 부처님 참 뜻 왜곡하는 행위"

노동부는 최근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직장내 성희롱 예방지침'을 발표했다. 이중 '특정 신체부위를 음란한 눈빛으로 반복적으로 쳐다보는 행위'가 과연 성희롱이 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두고 세간의 논쟁거리가 됐다. 그러나 정작 이런 법안들이 왜 제정돼야만 했는가에 대한 논의는 묻혀버린 듯 하다.

지금 우리사회에선 매맞는 아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많은 여성들이 현역이나 퇴역 매춘부로 전락하고 있다.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성폭력의 위협을 느껴야 하며, 여아는 아예 태중에서 사정없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취직시에 있어 차별, 직장 내 성희롱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차별 현상이 비단 여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된 사회구조를 바로잡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종교계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녀차별의 선두에 서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불자들의 70%가 여성이지만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활동하고 있는 여성단체들도 여성불자의 위상을 확립하고 주체성을 일깨우기보다는 지나치게 신행생활에 치우쳐 있는 등수동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해 스님은 "이제까지 여성의 역사는 한 줄기의 빛도 없는 커다란 분묘와 같았다"며 "여성해방 운동은 여성 자신의 운동이라야 하며 남자에게 의지하는 운동은 무의미하고 무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자각과 노력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스님은 1924년 3월 〈개벽〉에 발표한 '내가 믿는 불교'란 글을 통해 "불교는 사람이나 사물이나 모두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참으로 평등하다"며 불교의 평등정신을 강조했다. 스님은 억압과 착취의 시대에 불교의 평등사상을 기치로 일제에 항거했으며, 불교계 내부의 개혁에도 앞장섰다. 특히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남녀차별 철폐를 위해 강연회, 저술활동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만해 스님은 "아무리 좋은 이념을 갖고 있더라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좋은 씨앗이 있으면서 심지 않고 봉지에 넣어 매달아 두는 것과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스님은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크게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부처님은 당시 바라문에 의해 철저히 계급화된 사회를 부정하고 누구나 불성을 가진 존재로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천명했다. 이는 모든 존재의 평등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은 불교사상까지도 영향을 주어 여인의 몸으로는 범천, 제석, 마왕, 전륜성왕, 불(佛)이 될 수 없다는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모든 비구니는 비구에게 공경·복종해야 한다는 비구니팔경법까지 등장해 여성을 열등시하고 차별하는 논리적 근거로 자리잡게 됐다는 것.

그러나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교계엔 '비구'만 존재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비구 스님들의 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구니 스님의 활동이 제한되고 있으며, 상호 우대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일부에선 여전히 비구니 스님에 대한 비하와 배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종단운영에 있어서 비구니 스님이 주요 직책을 맡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사회활동에 있어서도 비구니 스님의 활동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교계의 실정이다.

만해 스님은 1927년 한 신문의 기고문에서 "여성에게 충분히 자각이 있게 되는 날, 조선불교는 비로소 힘있게 전개될 것"이라며 "여성의 자각이 여성의 해방, 나아가 인류해방의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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