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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정우 스님(구룡사 주지)

기자명 정우 스님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얼마전 북인도 히말라야산맥 깊숙한 곳 나닥(LA DHAK)에 다녀오다가 그곳에서 들에핀 들꽃보다 더 작은 아주 작은 이름모를 꽃들이 세상에서 제일높다는 히말라야산 정상에 터를 잡고 뿌리내리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세상은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작은 들꽃풀들이 그 큰 산들을 발밑에 잡아두고 있드라는 것입니다.

그때 지혜있는 자의 눈에 비친 부나방의 몸짓과 줄잣대로 재고있는 현실에서의 참자유는 자연인으로 돌아갈 때 가능한 것임을 자연의 섭리속으로받아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서있어야 할 자리는 허공에 구름처럼, 그림자같이 불확실한 무제일 뿐 실체가 없었습니다.어느날인가 우리인생도 한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속으로 떠내려가다 묻히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기에는 너무 아쉽고 짧은 인생입니다.

가고나면 언제다시 올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붓다는 “일체가 오직 마음의 조작"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드려다 봐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행동해 왔던 것이나 앞으로의모습도 결국은 자기 스스로가 행동한 것입니다.

요즘은 점점히 깊어가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느냐, 아니 무엇을하고 있느냐”에 대한 자문자답(自問自答) 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목소리로 종교계를 향해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는 곳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더 많은 우리의 종교인구가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정신적으로 병들어가고 있고, 그러한 행동들이 여기 저기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찰이나 공공시설물이 방화에 시달리고 있는, 단편적인 모습은 어쩌면 긴세월 많은 것들만 소유하고 너무 쉽게 안주하여 버린 것이 아니였던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선지식은 늘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조건없는 인생을 살아라, 그리고 세상살이에 집착하지 말아라, 장애있는 곳에서 도를 구하라”그리고 늘 살피면서 살아가는 인생을 노래 하였습니다.

참 자유가 자연인의 모습이라면 진정한 자비심도 살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있는자가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때 불자(佛子)의 자비심은 싹이 트는 것입니다. 힘도 없는 자가 한없이 당하면서도 상대방을 용서한다는것은 어쩌면 비굴한 모습일 것입니다.

보조국사 말씀과 같이 진정한 용기는 땅에서 넘어진 자가 땅을 딛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젠 더 이상 담넘어 이웃집 불구경이나 하고 처 삼촌 묘자리 벌초하듯 살아갈 것이 아니라 어느곳에서나 고달프지 아니할 마음을 찾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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