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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수? 우리 없인 어림 없어요"

기자명 김형규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기울어진 탑 쓰러진 건축물 복원
현대장비 없이도 수 톤 자재 '척척' 옮겨
보수대·각목대 등 전통장비 고수

일반사람에게 '드잡이'란 말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전통가옥이나 문화재 복원·보수 공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드잡이라고 하지만 나무를 다루는 목수도, 돌을 다루는 석수도 아닌 드잡이라니.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그러나 불과 4∼50년 전만해도 목수나 석수보다도 더 중요시 되었던 직책이 드잡이였다.

드잡이는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그 대상을 들어서 바로 잡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울어져 가는 탑이나 쓰러질 위기에 놓인 건축물 등을 바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 드잡이의 일인 것이다. 꼭 해체위기에 놓여져 있지는 않아도 설립시기가 오래되어 보수가 필요하다고 판정된 건축물을 복원하는 것도 맡았다. 그러나 드잡이는 이것만 했던 것은 아니다. 기계가 발달하지 못한 옛날엔 몇 톤씩 되는 주춧돌이며 목재를 나르는 일부터, 일을 할 수 있도록 터를 닦고 주위에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도 드잡이의 몫이었다. 한마디로 드잡이는 전공은 없지만 하나의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건물자재를 옮기거나 커다란 건물의 중심을 잡는일을 하다보니 스승에게 배운 기술 외에도 지형지물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창조성이 드잡이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특히 기중기나 크레인 등 장비조차 변변치 않은 시절 산속에 사찰이나 집을 짓거나 성벽을 쌓을때 창조성은 가장 크게 발휘됐다. 계곡과 강을 건너 목재를 나르고 길이 없는 산속에서 건축자재를 나르는 일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지만 드잡이들은 장비가 변변치 않던 그 시절에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 어렵지 않게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서 드잡이의 역할은 쇠락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중기며 크레인, 트럭과 헬기 등 장비와 기술의 발전이 드잡이의 고유역할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주 재료로 쓰는 것도 나무와 석재로 구성되던 건축물에 필요하던 드잡이들에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드잡이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도 있다. 문화재 복원과 보수가 그것이다. 조그만 힘을 줘도 무너지기 쉬운 문화재를 땅을 뒤흔드는 광음을 들이대며 달려드는 기계로 복원을 시도한다는 것은 현대 문명의 오만일 수밖에 없다.

드잡이들은 문화재 복원이나 복구에 9m 크기의 나무 두개로 만든 '각목대'와 하나의 나무로 만든 '보수대' 등 전통 기계를 사용한다. 또 연자방아식으로 쇠줄을 달아 돌리는 '각구라'를 써 1톤이상의 석재도 자유자재로 들어 올린다.

특히 길이 없는 산속이나 절벽에 인접해 있는 곳에서 성벽을 보수하는 일은 현대기술로도 거의 불가능해 드잡이가 아니면 해 낼 수 없다.

드잡이 일에 사용되는 쇠줄은 삼베를 꼬아서 도르레에 이어 만든 것을 사용했다. 삼베도 조달하기 어려웠던 시절, 여인의 머리카락을 엮어 사용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원로 드잡이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마지막 드잡이-이병재·홍정수씨

"드잡이 사라져 가는 현실 안타까워"

"드잡이요, 이제는 진정한 드잡이는 몇 없어요. 기능인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고 해서 어디 드잡이입니까. 줄 메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원로 드잡이 이병재씨(드잡이공 154호. 64)와 홍정수씨(드잡이공 190호.60)씨는 "제대로 기술을 전수받은 드잡이가 없어 전통적으로 전래되던 기술이 사장될 위험에 처해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건물을 통채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보수대, 각목대를 사용하는 방법 등 수십년을 배워야 비로서 드잡이로서 인정받는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줄 메는 방법 몇 가지를 시험보고 문화재 보수과에서 기능인 자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재 보수과에 등록된 드잡이는 모두 102명.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드잡이는 몇 되지 않고 대부분은 현대적인 장비로 공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드잡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우리나라 문화재의 절반이상을 보수하거나 복원한 드잡이계의 산 증인이다. 일제이후 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잡이 김천석(작고)씨에게 함께 사사했다.

현재 삼재건설에 재직중인 이병재씨는 50대 후반 삼촌인 대목장 이광규(작고)의 도움으로 김천석씨의 문하에 들어가 흙짐을 지는 일부터 건물을 통채로 옮기는 방법까지 모든 기술을 전수받았다. 살기가 어려워 시장에서 장사를 한 적도 있지만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문화재 보수나 복원 공사에는 빠지지 않고 있다.

그는 사직공원 이전공사에서 건물을 분해하지 않고 통채로 옮기는 기술을 발휘했으며 남대문 해체 보수, 경남 통영의 세병관 복원, 석굴암 보수 등 크고 작은 공사에서 능력을 보여왔다.

이병재씨와 동문수학한 홍정수씨도 30년 이상 문화재 복원·보수 공사에서 드잡이로 명성을 날려 왔다. 그는 지금도 모든 작업을 현대기계를 쓰지 않고 전통식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대문 보수공사에 이병재씨와 함께 참여한 것을 비롯해 탑만도 120여기를 보수하거나 옮겼으며 수원성과 김유신 장군 사당 복원 등이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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