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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구족계와 보살계를 대립시키는 오해

기자명 정원 스님

보살계 내세워 성문율 무시하는 풍조 경계해야

동아시아는 ‘대소겸수’ 계율전통
구족계·보살계 대립인식은 잘못
중생제도 미명하에 범계 안 돼

중국은 4~5세기를 거치면서 성문율장의 번역이 완성되자 여법한 갈마법을 통해 구족계를 받아야 정식 비구와 비구니가 된다는 의식이 보편화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비구와 비구니가 수행의 목표를 아라한에 두지 않고 무량겁을 거치더라도 불도를 이루고 보살도를 실천하겠다는 보리심을 발하면 추가로 대승보살계를 받았다. 즉 구족계를 받은 출가자가 보살계를 추가로 받아 지니는 대소겸수(大小兼修)의 풍토는 중국불교 역사에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신라불교 역시 초기부터 출가사문은 구족계를 받았고 대승보살계가 설해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기록은 원광법사(555~638)에 이르러 나타난다. 뒤를 이어 자장 스님(590~658)에 의해 사분율에 의한 구족계 수계와 범망경 보살계를 함께 받는 계풍이 확립되었고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으니 한국불교의 계율전통 역시 대소겸수라 하겠다. 이와 달리 일본불교는 천태종의 개조인 최징(最澄, 767~822)의 제안으로 구족계를 폐지하고 대승계만으로 정식수계를 인정하면서 동아시아 불교전통으로부터 일탈하게 되었다.

대승보살계는 ‘해심밀경’ ‘보살지지경’ ‘보살선계경’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등의 유가계 경론에 기반한 유가보살계와 범망경보살계가 있다. 유가보살계는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의 삼취정계 사상에 의해 섭율의계에 비구계, 비구니계, 식차마나계, 사미계, 사미니계, 우바새계, 우바이계 등 출가5중과 재가2중의 계를 모두 포함한다. 각자의 신분에 합당한 계를 미리 수지한 후 유가보살계를 받는 구조이다. 그래서 유가계본에는 살도음망의 네 가지 중죄를 언급하지 않고 범망경 10중계 중 다섯 번째인 자찬훼타계부터 다루고 있다.

‘범망경’에는 삼취정계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천태지의 대사가 ‘범망경보살계의소’를 쓰면서 유가계의 삼취정계 사상을 ‘범망경’ 해석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로써 중국불교는 범망계와 유가계의 결합은 물론 섭율의계에 사분율을 포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러한 전통은 원효 스님의 ‘보살계본사기’와 ‘보살계본지범요기’ 법장 스님의 ‘범망경보살계본소’ 태현 스님의 ‘범망경고적기’ 승장 스님의 ‘범망경술기’ 등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현재 한국불교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상충하는 대립구도로 받아들이고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며, 심지어 사분율은 필요 없고 십선계만 받으면 된다는 황망한 말까지 가능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출가자들의 계율연구와 이해가 척박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관련 분야를 다룬 다수의 학술논문에서 양자를 대립관계에 놓고 논지를 펼치는 오류가 반복된 것이 부수적 원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원효 스님의 ‘보살계본사기’와 ‘보살계본지범요기’는 성문율과 유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섭중생계의 적극적인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율장에 대한 이해가 상당했다는 사실은 자신보다 20년 앞선 도선율사의 ‘행사초’를 매우 상세하게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율장에 대한 이해와 지계를 기본으로 하는 출가수행자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보살이 가장 중시 여기는 중생제도를 위해서 계상에 얽매이지 않는 적극적인 계율 실천을 강조하지만 중생을 위한 범계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살도음망의 중죄를 범해도 파계가 아니라 복이 될 수 있는 보살의 경지는 ‘중생의 모든 근기를 파악하고 달통한 대보살’이라고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보살계를 이유로 들면서 성문율을 무시하고 중생제도라는 미명하에 범계를 가볍게 여기는 풍조는 경계되어야 한다.

별도로 짚어보고 싶은 것은 한국불교에서 원효와 요석공주의 일을 두고 파계라는 말을 의심 없이 써왔는데 이것이 타당할까라는 의문이다. 언제 누구로부터 이 표현이 비롯되었는지는  연구해봐야겠지만 율장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원효 스님이 상대방에게 ‘계를 내놓다’는 말만 해도 성립되는 여법한 환속절차를 몰랐을 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척박한 계율연구와 이해로 사계(捨戒)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기에 세속적 입장에서 누군가 파계라고 규정한 이후 습관적으로 의심 없이 답습한 것은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65호 / 2020년 1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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