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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악의 번뇌

시간적 간극 없는 번뇌의 급습

공포 수반해서 일어나는 번뇌
담력 세도 경악에는 속수무책
수행자라도 경악 정복 어려워
자아에 대한 집착 놔야 가능

불교에서는 번뇌를 조복 받으라고 가르친다. 번뇌는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이 끊어지면 열반이 실현되고 해탈이 성취된다. 번뇌의 수효는 무량하다. 오죽하면 객진이라 했을까? 객진은  손님과 같고 먼지와 같다는 뜻이다. 손님은 왔다 곧 떠나고 먼지는 깨끗한 물건을 더럽힌다. 육근에 의해 들어오는 육경들은 중생의 마음에 손님처럼 들어와 먼지처럼 자리 잡는다. 먼지 속에 살면 병들어 마침내 죽게 되는 것처럼 번뇌에 뒤덮인 중생은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된다. 번뇌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이 같은 번뇌들 가운데는 특이한 양상을 띤 번뇌가 있다. 바로 공포를 수반해서 일어나는 경악(驚愕)이다. 경악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번뇌는 일어날 때에 시간적 간극이 있다. 탐내는 마음이나 성내는 마음, 불안한 마음이나 슬픈 마음 등은 그것들이 일어날 때 대응하거나 다스릴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다. 가령 화가 난다고 할 때 화가 폭발하기 직전 짧은 시간이나마 억누르고 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에 반해 경악은 대응할 시간적 여유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십년을 감수할 정도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놀라는 순간에 벌어지기에 이를 다스릴 틈이 없다.

따라서 아무리 담력이 센 사람도 경악에는 속수무책이다. 혹 선정을 많이 닦은 수행자라 할지라도 경악을 정복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경악은 눈에 보이는 대상들로부터도 발생하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로 인해서도 발생한다. 갑작스레 들리는 굉음에도 그렇지만 넋 놓고 앉아 있을 때는 작게 들리는 소리에도 그렇다. 갓난 아이가 놀라는 것도 대부분 소리 때문이다.

경전에도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부처님 당시 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병사들과 훈련을 끝내고 함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자다 깨어보니 병사들 일부가 자신을 향해 발을 뻗은 채 한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잠을 자는 것이었다. 내심 괘씸하기도 궁금하기도 해서 병사들을 깨워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머리를 둔 쪽에 스승이신 부처님이 계셔서 그랬다”고 답했다. 장군은 부처님이 누군지를 묻자 “부처님은 죽음을 정복했기에 어떤 공포도 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장군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자부했다. 전쟁 중 화살에 맞아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나 사로잡혀 사형당할 처지일 때도 떨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은 부처와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커진 장군은 부처님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그가 병사들과 함께 기원정사에 도착했을 때 부처님은 제자들과 선정에 들어계셨다. 주변은 적막이 흘렀고 평온이 가득했다.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기에 기다리던 장군은 앉은 채로 깜빡 졸게 됐다. 얼마를 졸았을까? 갑자기 “우르릉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장군은 벌떡 일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칼을 빼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정사는 조용하기만 했다. 누구도 눈을 뜨거나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알고 보니 장군을 놀라게 한 소리는 옹기장수가 마차에 실고 가던 옹기들이 부주의로 깨지며 난 작은 소리였다.

이윽고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선정에서 깨어나셨다. 부처님은 선정에 드셨지만 장군이 기원정사를 방문하게 된 일을 이미 아셨다. 부처님은 장군과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설법했다.

“백만의 적군과 싸워 이긴 승자보다도 단 한사람 자신과 싸워 이긴 사람을 진정한 승자라 부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은 장군은 수많은 적을 이겼지만 하잘 것 없는 옹기 깨지는 소리에도 크게 놀란 자신이 아니라 스스로와 싸워 이긴 부처님이야말로 진정한 승자라며 찬탄하고 귀의했다.

사람이 놀라는 것은 공포심 때문이다. 공포심은 자아에 대한 집착과 이어져 있다. 집착은 자아가 실재한다고 여기는 근원적 어리석음, 즉 무명(無明)으로 인해 생긴다. 수행을 통해 무명이 타파된다면 공포심이 없고, 공포심이 없으면 경악은 일어나지 않는다.

살다보면 늘 크고 작은 사건들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번뇌에 짓눌리거나 놀랄 상황과 마주하기 싫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대응할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길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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