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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출가

기자명 성원 스님

운전면허증도 버리며 나섰던
젊음의 용감·당당했던 선택이
‘승가’라는 또 다른 편한 집에
머무름으로 변한 것은 아닌지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올해만큼 이 말이 실감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올해는 출가 전 세월보다 출가 후 세월이 더 많아지는 첫해다. 태어나 출가자로 살았던 삶이 재가에서 살았던 시간들보다 많아지는 나이가 되니 지난 시간들을 한참 뒤돌아보았다.

처음 출가를 결심하고 집을 나설 때 정말 서슬 푸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출가의 삶을 전혀 모른 상태로 무작정 나서면서 출가는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은행 통장을 없애고, 신용카드를 구겨버리고, 심지어 운전면허증까지 가위로 잘라버리고 딱 주민등록증 한 장과 얼마간의 현금만 지참하고 나섰다.

그야말로 빈 몸으로 집을 나섰고 절로 들어왔었다. 머릿속에서는 풀리지 않는 완전한 삶에 대한 생각만이 오롯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정말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이 뭔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오직 젊음의 열정이 그렇게 용감하고 당당하게 길을 나서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출가 후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무협 영화에 나오듯이 아무에게 다가가 ‘사부님!’ 하면 사제의 인연이 맺어지고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우리 불교의 은상좌 관계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무슨 만용인지 몰라도 훌륭한 은사를 찾겠다며 그토록 지루하게 느껴지는 행자생활을 곱으로 하면서 제주까지 가서 인연을 맺고서야 안착했다. 처음 만났을 때 은사이신 혜인 스님은 참 편안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섭다고 했는데 나는 참 친숙하다는 생각이 든걸 보면 정말 인연이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승가의 삶도 엉킨 실타래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계 후 소감을 쓰는 글에서 ‘승가라는 집에서 출가해 온전한 자유의 삶을 일구고 싶다’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승가는 그야말로 젊은 출가자의 눈으로 봤을 때 분명 또 다른 갇힌 집이었다.

올해 출가의 삶이 인생의 절반을 넘어서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삭발염의하고 있어 출가자라고 하지만 또 다른 승가라는 편안한 집에 머무르며 살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나에게 출가자의 삶을 살았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온전히 집을 나서지 못하고 그저 집을 바꾸어 살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올해 들어서 수계 때 소감으로 쓴 ‘승가라는 집에서의 출가’를 자꾸 생각하곤 한다. 몇몇 도반들과 이런 말을 나누었더니 대부분 깊이 공감한다. 이러한 고독감은 비단 혼자만 가지는 특이한 형질의 성찰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더 씁쓰레하다.

사람들이 자꾸 나오라 한다. 너무 제주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나와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제주서 사는 삶에서도 번뇌가 가득한데 어디로 나가서 또 무슨 가면을 쓰고 번뇌를 쌓으라는 말일까?

성원 스님

자꾸 나를 가둔 집과 나 스스로 가둔 집을 생각하다 보면 옆구리에 뭔가가 움트는 것만 같다. 작가 이상이 느꼈던 그 날개의 느낌이 새삼 이 나이에 느껴지는 것만 같다. 다시 새로운 날개가 돋아 다시 한번 날 수 있을까? 갇힘 없는 세상으로 두 번째 출가를 꿈꾸고 싶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577호 / 2021년 3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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