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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이상적인 과거는 없다

기자명 마성 스님

승가 이상적 모델 과거에서 찾는 게 최선 아니다

남방·북방 모두 옛 것 이상으로 삼는 과거지상주의자 많아
부처님 당시에도 타의로 개종한 비구·비구니들로 잦은 갈등
부처님 계 지키는 수행자 많아야 승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

스리랑카 두 번째 고대 수도 폴론나루와(Polonnaruwa) 왕궁 터에 남아 있는 사원 모습. 12세기 빠라끄라마바후(Parakramabahu) 1세 왕 재위 때 건설됐다. 불치 사리 보관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지만 전쟁으로 파괴돼 현재 모습으로 남아 있다. 경전을 새긴 돌로 축조했으며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스리랑카 두 번째 고대 수도 폴론나루와(Polonnaruwa) 왕궁 터에 남아 있는 사원 모습. 12세기 빠라끄라마바후(Parakramabahu) 1세 왕 재위 때 건설됐다. 불치 사리 보관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지만 전쟁으로 파괴돼 현재 모습으로 남아 있다. 경전을 새긴 돌로 축조했으며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많은 사람은 과거가 가장 살기 좋은 상태였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현재 상태는 불만족스럽고, 미래는 더욱 나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과거 지향적 현상을 ‘과거 지상주의(至上主義)’라고 부른다. 특히 종교인 가운데 과거 지상주의자들이 많다. 과거 지상주의는 종말론 혹은 말세론과 관련이 있다. 인류는 처음 지상낙원에서 살았는데, 점차 타락하여 결국에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도들도 성자나 아라한은 과거에 많았고, 현재는 부패하고 타락했으며,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상적인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기루에 불과한 ‘이상적인 과거’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추적해보면,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그들도 ‘이상적인 과거’를 동경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인들은 고대 전설상의 임금이었던 요순(堯舜)시대는 태평성대(太平聖代)였다고 믿고 있다. 요순시대는 이상적인 정치가 베풀어져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요임금과 순임금을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숭앙하고 있다. 특히 폭군을 만나 폭정에 시달릴 때 더욱더 요순시대를 동경하며 위안을 삼았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 ‘과거 지상주의’이다.

5세기경에 저술된 빨리 주석서에서도 과거에 살았던 장로(長老)들을 칭찬하고, 동시대의 승려들은 수행자답지 못하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승려들도 과거의 승려들에 비해 신심과 근기가 낮다고 비판한다. 승가의 이상적인 모델을 과거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은 남방불교나 북방불교나 매한가지이다.

특히 불교근본주의자들은 붓다시대의 불교를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붓다시대에도 붓다가 제정한 계를 지키지 않고, 승가 내부에서 계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비구와 비구니들이 있었다. 비구와 비구니들이 사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저지름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율장의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ātimokkha)가 제정되었다. 빨리 율장의 비구 227계와 비구니 311계는 모두 사문답지 못한 행위를 저지른 승려가 있었기 때문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붓다가 제정한 계를 지키지 못하겠다고 공공연히 반대한 비구도 있었다. 이를테면 ‘밧달리-숫따(Bhaddali-sutta, 跋陀利經)’(MN65)에 나타난 사례가 그 대표적이다. 한때 세존께서는 열세 가지 두타행(頭陀行, dhutaṅga) 가운데 하나인 ‘한 곳에서만 먹는 것(ekāsana-bhojana)’을 실천하라고 비구들에게 당부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한 자리에서만 먹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한 자리에서만 먹을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한다.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한 자리에서만 먹도록 하라. 그대들도 한 자리에서만 먹을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밧달리(Bhaddāli) 존자는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만 먹는 수행을 할 용기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한 자리에서만 먹을 때 제게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밧달리여, 그렇다면 그대가 초청을 받은 곳에서 일부는 먹고 일부는 가져가서 먹도록 하라. 밧달리여, 이와 같이 먹을 때 그대는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먹는 것도 행할 용기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먹더라도 제게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것을 학습계목(sikkāpada)으로 제정하여 공포를 하셨고, 밧달리 존자는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다. 그리고 밧달리 존자는 안거 석 달 동안을 세존의 면전에 나타나지 않았다. 스승의 교법에서 이 학습계목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MN.Ⅰ.437-8)

또 ‘끼따기리-숫따(Kīṭagiri-sutta)’(MN70)에 의하면, 세존께서 오후불식의 계를 제정했다. 그러나 끼따기리에 거주하고 있던 앗사지(Assaji)와 뿌납바수까(Punabbasuka)라는 두 비구는 동료 비구들에게 “우리는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을 것입니다.”(MN.Ⅰ.474)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승가 내부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비구·비구니들이 나타나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의에 의해 비구·비구니가 된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비구·비구니가 된 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붓다는 당시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깟사빠(Kassapa, 迦葉) 삼형제를 개종시켰다. 이것은 종교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때 1000명의 배화교도(拜火敎徒)들이 자기들의 스승과 함께 불교로 개종했다. 또 당시 회의론자였던 산자야 벨라띠뿟따(Sañjaya Belaṭṭhiputta)의 제자였던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와 목갈라나(Moggallāna, 目犍連)가 붓다께 귀의할 때 250명이 함께 불교로 개종했다. 또 붓다의 양모였던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가 석가족의 여인 500명을 데리고 출가하여 비구니 승가를 성립시켰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승가는 자의에 의해 비구·비구니가 된 것이 아니었다. 개종한 자 중에는 수행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자도 있었다. 이들 때문에 승가에서는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가 모시고 있던 윗사람이 개종하거나 출가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개종하거나 출가하게 되었다. 이들이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던 것이다.

요컨대 과거에도 계를 지키지 않고 말썽을 일으킨 비구·비구니가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르게 수행하는 붓다의 훌륭한 제자들에 의해 승가는 유지되었고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만이 최선은 아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77호 / 2021년 3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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