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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할(喝)

기자명 이제열

수행자 무명 깨우는 벽력같은 고함

선에서는 초논리적 언어 구사
임제선사, ‘할’로 수행자 지도
상대 근기 따라 시의적절 활용
팔만사천법문 응축된 활구법문

중국선의 특징은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에 있다. 여기서 문자는 부처님이 설하신 교법인 경전을 의미한다. 아무리 경전이라도 선수행자에게는 지혜를 가리는 알음알이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에 경전을 ‘눈을 가리는 비단 부채’라고 했다. 큰 절 앞에 쓰인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에서 ‘지해’도 경전에 대한 지식을 가리킨다. 부처를 보려면 경전의 지식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이다.

선은 스승의 언어에 의지해 단박에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는 ‘직지인심견성성불’을 추구한다. 스승은 제자의 근기를 간파하고 곧바로 수행자의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자각케 한다. 부처가 되는 것은 팔정도나 육바라밀과 같은 경전에 입각한 수행이 아니다. 

스승의 언어 한마디에 곧바로 부처의 지위에 들어간다.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대성인도 자그마치 삼아승지겁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에 걸쳐 보살도를 닦아 비로소 성불하였는데 스승의 말 한마디에 성불이 가능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선가에서 스승이 쓰는 언어는 경전 구절이나 구구절절한 이론들이 아니다. 스승은 수행자가 이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초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이 언어법은 획기적이고 돌발적이며 반어적이다. ‘선도 악도 생각지 않을 때에 행자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부처란 마른똥막대기’ 등 수많은 선가의 일화들이 거의 그렇다.

이러한 선가의 언어들 가운데에서도 더욱 파격적인 언어가 있다. 곧 고함소리 ‘할(喝)’이다. 할은 임제선사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분이 즐겨 썼던 교육방식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후에 많은 선사가 영향을 받아 수행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나라 불교에도 이 같은 할을 사용하는 선사들이 계시다. 

짐작컨대 임제선사의 고함은 마치 벽력소리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법을 묻는 수행자의 무명심이 깨져나가지 못한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고 선사를 만난 사람 중에는 고함소리에 놀라거나 주눅이 들어 황급히 도망 나온 이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제선사의 할을 분석해보면 자신을 찾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상대의 분상이나 입처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임제선사가 법좌에 오르자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였다. 이에 선사가 갑자기 “할!” 하자, 그 스님은 “노화상(큰스님)께서는 사람을 떠보지 마십시오” 하였다. 선사가 “그대는 말해보라. 할이 어디에 떨어졌는가?” 그 스님이 즉시 “할!” 하였다.

두 번째는 상대의 무명과 전도심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이다. 한 스님이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하니 선사께서 버럭 “할!” 하였다. 이에 그 스님이 절을 하자 “그대와는 법담을 할 만하구나” 하셨다. 그 스님이 “선사께서는 어느 가문의 곡조를 부르시며 어느 분의 종풍을 이어 받으셨습니까?” 여쭈니 “나는 스승이신 황벽 스님에게 세 번을 물었다가 세 번을 얻어맞았다.” 그 스님이 선사의 대답에 머뭇거리자 “할!”하시며 “허공에 말뚝을 박아서는 안 된다.” 하셨다.

세 번째는 선사의 깨달은 분상을 상대에게 보이기 위해서이다. 선사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할은 금강왕의 보배 칼 같고, 어떤 할은 땅에 웅크리고 앉은 금빛사자와 같으며, 어떤 ‘할’은 어부가 고기를 찾는 장대와 그림자풀 같고, 어떤 할은 할로써의 작용을 못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 스님이 대답하려하자 산사가 “할” 하였다. 여기서 땅에 웅크리고 앉은 사자란 바로 선사의 경지이다.

임제선사의 할은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것이 아니다. 상대의 근기를 살피고 이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행해진 할은 팔만사천법문의 응축이라 할 수 있다. 배운 지식을 쏟아내는 사구 법문이 아니라 활발발한 지혜에 의해 나오는 활구 법문이었던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77호 / 2021년 3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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