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봉덕사와 나의 어린 시절

기자명 최명숙

나를 키운건 ‘인연’이 아닐까

추억 담긴 봉덕사서 혜욱 스님과
대화 나누며 떠올린 소중한 인연
전생의 인연은 현생으로 이어져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봉덕사 전경.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봉덕사 전경.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이는 춘천 의암호는 봄빛을 가득 담고 출렁인다. 햇살이 비쳐 반짝이는 호수의 물도 서로에게 인사를 하니 정말로 반갑기 그지없다. 오늘도 오가다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한 인연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 어린 시절 기억 저편에 있는 추억을 안고 글 한 줄 남길 수 있으리라는 바람과 함께 대문을 나섰다. 고향 어르신이나 친구라도 만나리란 기대도 가져본다.

의암호를 한참 돌아 들어가다 보면 내가 자란 고향마을로 가는 초입에 봉덕사가 있다. 절로 들어가는 언덕길에는 노랗게 아름답던 은행나무의 가지마다 새잎을 틔우기 위해 물이 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고, 대웅전 옆 미륵부처님이 어서 오라고 뛰어 내려오시는 듯 하다.

언제나 반겨주시는 주지 혜욱 스님의 환한 미소에 아늑한 고향에 왔음을 느낀다.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사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조각조각 떠올랐다. 눈가에 주름이 가득해 나이를 속일 수 없을 정도의 세월이 흘렀어도 어린 날의 나는 그대로였다.

봉덕사 앞엔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있었다. 부모님도 다녔던 학교는 내가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새 교사로 이사를 했었다. 혜욱 스님께서도 50여년 전 일인데도 기억을 하고 계셨다. 그 당시 봉덕사가 현재의 자리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아마 은사 스님을 모시고 있던 혜욱 스님도 어린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도 2km쯤 더 들어가 있어 장애가 있는 어린 내가 걸어서 등하교를 하기에는 먼 길이었다. 농번기로 농사일이 바빠지자 어머니는 더 이상 학교를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서 “오늘부터 조심히 너 혼자 가라”고 하셨단다. 개울을 업어 건네주고 멀리서 등교하는 내 뒤를 밟았는데 돌부리에 넘어지면서도 잘 가서 안심했다고 한다. 나이든 내게 담담하게 말하셨지만 노심초사했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람의 몸을 받고,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았기에 잘 자랐고,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 법을 만나 불자가 되고 봉덕사까지 왔으니 참으로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어느 생에라도 다시 부모와 자식으로 인연이 되어 은혜를 갚을 수는 있을까?

지금 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시지만 부모님이 주신 이 몸도 지금 이 생애 단 한 번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삶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함으로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 시절 봉덕사에서 놀던 기억이 남아 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로는 법당에서 가만있지 못하는 나를 야단치는 어머니에게 스님은 부처님이 좋아 그러는 것 같으니 그냥 두라고 하면서 놀게 하셨다고 한다.

단풍 든 절 앞 바위에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있다는 나의 말에 혜욱 스님은 “그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소풍 갈 만한 곳이 없어 절로 소풍을 오곤 했어요. 아마 그 기억일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절에 갔다 오신 날에는 “저 아래 스님께서 모든 것은 다 네 마음에서 이뤄지고, 바른 마음 간직하고 살면 좋은 인연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너에게 자주 말해주라고 하셨다”고  하신 말씀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혜욱 스님은 수생에 걸쳐 이어진 소중한 인연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차를 더 내려주셨다. 찻물소리를 들으니 나를 자라게 한 어린 시절의 친구와 선생님, 오늘 봉덕사까지 오는 길에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모두 나에게 소중한 은혜를 베풀었던 전생의 인연에서 현생의 인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은혜를 베푼 소중한 전생과 현생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조금 녹록지 않을 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 또한 남을 살피면서 수행정진한다면 삶을 따뜻하게 사는 불자가 되어 좋은 이음과 맺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77호 / 2021년 3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