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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과 방종 사이에서

불교의 최대 장점은 자유와 자율을 중시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자는 자유와 자율은 불교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최대 약점으로도 평가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인도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장점은 생각할 수 없다. 출가자의 나이나 성별, 신분을 논하지 않았다. 누구나 부처님의 품 안에서 자유롭게 수행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규범은 자율적으로 지켜야 했다.

 계율이 성립하고 교단이 발전하면서 출가의 자유에는 제동이 걸렸다. 누구나 원하면 출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가를 금지하는 예외 조항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수행생활에 대한 자유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했다. 다만 포살이나 자자를 통해 수행자 개인과 수행공동체의 상황을 점검했다. 수행자가 규범을 잘 지키면서 수행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강제성은 개입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했다. 

 중국에 들어온 불교, 특히 초기의 선종교단은 인도적인 불교의 계율에 지배를 받지는 않았다. 다만 수행공동체의 질서와 화합을 위해 특유의 공동규범을 만들었다. 하지만 수행공동체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자유였으며, 구성원 상호간의 존중과 배려가 있었다. 선종의 수행 공동체에는 은산철벽을 돌파하겠다는 굳은 심지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머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러한 초기의 정신이 희미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서두가 긴 것은 내장사 대웅전 방화사건 때문이다. 전 국민을 경악 속에 빠뜨린 내장사 대웅전 방화사건 피의자는 공동생활을 하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섭섭하게 대해 불을 질렀다고 한다. 이런 고백은 출가 정신의 부재를 의미했다. 고독한 수행의 길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지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도 수행으로 승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상황을 보면서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도에 의하면 방화범은 사찰에 기도하러 온 사미승이라 한다. 금년에 승가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는 50이 넘었다고 한다. 속된 표현으로 늦깎이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50이면 세상의 물정을 어느 정도 경험한 사람일 것이다. 더구나 늦게 출가를 결심할 정도면 굳은 심지가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순간의 울분을 참지 못해 대웅전에 불을 붙였다면 수행자가 되기에는 부적격자로 볼 수밖에 없다.  

이 화재 사건에 대한 일련의 전개 과정을 보면 방화범의 횡설수설을 이해할 수 없다. 방화의 원인인 대중 사이의 불화를 떠나, 방화범 당사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자율과 자유를 중시하는 불교계라 하지만 적어도 방화범의 출신과 신분에 대한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출가자의 감소로 인해 출가 연령을 상한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행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적합한지 점검할 필요는 있었다고 본다. 

근대사회의 태동과 변화의 과정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것은 불교계의 커다란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불교계가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은 지난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불타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출가자의 관리에 대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일탈을 방지하고 수행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관리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교단의 자정 기능 향상과 함께 불교계의 대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해방 이후 불교계의 전개과정은 자율적이기보다는 의타적 내지 타율적이었다. 교단의 자정 기능도 붕괴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저러한 점들이 교단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평가한다. 내장사 대웅전 방화사건은 가슴 아픈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혜와 원력을 모으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svhaha@hanmail.net

 

[1578호 / 2021년 3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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