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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칼럼-불경이 말해주는 훌륭한 지도자상

기자명 임헌영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우주의 섭리대로 어김없이 가을 기운이 아침 저녁 소매 밑으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추석이다. 불경기의 주름살이 사회 곳곳에 드리워지긴 했으나 민족 대이동은 여전하고 일가 친척들을 만나려는 들뜬 박동은 전국토의 동맥에 넘쳐 흐른다. 더구나 선거가 있는 해의 추석에는 도시로부터 정성스럽게 싼 선물 꾸러미 말고도 볼우물 아래에다 고향에 가서 뿌려야 할이야기 보따리들을 가득 담아 떠나기 일수다. 아마 어떤 선물에 못지않게객지의 젊은이를 맞는 고향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애타게 기다릴지 모른다.

텔레비전과 신문 종류로 따지자면 선진국에 뒤질 것도 없을 것 같은 우리나라이긴 하지만 여전히 국민 절대다수가 정보에 굶주리고 있는 것은 특정신문을 빼고나면 알만한 거의의 신문들이 항상 여당을 지지해 왔고, 이번에도 여전히 그럴 것인데, 여기에다 텔레비전까지 합세하여 특정 정당을 입체적으로 비호해 준다면 보통 사람들은 정보의 절대 빈곤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회 분위기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명분으로 대중집회를 줄이는 대신 텔레비전 토론에다 국민의 알 권리를 거의 일임하다 시피 되어가는 이번선거전의 초반을 보노라면 아, 이건 막판 뒤집기가 누워 식은 죽먹기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먹듯 자죽도 안 남기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겠구나 시청률이 가장 높아질 순간에 폭탄선언이나 폭로전으로 나가면 그러잖아도 깜짝쇼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대중들의 체질적 궁합과 맞아떨어져 이제까지 언제나그렇듯이 ‘하나마나 선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버릴 수 없다.

등룡을 노리는 잠룡(潛龍)이나 교룡(蛟龍)이 대거 진출한 사실을 냉소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부 야당은 물론 집권당 내에서까지 경선이 이뤄진 사실은 가히 한국 정당사에서 혁명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1당 1출마자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게 혼란을 비칠 수도 있지만 아직은 계보정치가 정착하지 못한 초기의 미숙으로 본다면 분명 정치사에서의 큰 변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국민 다수가 대통령 입후보자들의 참모습을놓칠 수는 없을 터이나 그렇다고 보다 진솔한 입후보자를 선택하기란 그리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이미 진흙탕에 몸을 푹 담근 채 “비가 오는 것을 자기 당의 공로로 말한다면 가뭄은 상대당의 잘못으로 저질러진 것”이라 우기지 말란 법도 없는 판국이 되고 있지 않은가.

좋은 정치인을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일하게 성실한 정치가란 한쪽 모퉁이에서 사진기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노파와 포옹하는 인물”이라는 말을 따르는 것도 좋을 듯 하나, 실제로는 사진이 없기 때문에 정작 노파는 물론이고 나환자까지 끌어 안았는지 아무도 모르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카메라기자 대신 증인을 대동하고 행하는 행위라면 차라리 사진기자를 동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의 마음가짐은 마치 경건한 신앙심으로 훌륭한 스님을 찾아나서는 자세와 닮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염불만 잘 하는 스님이있을 수 있듯이 정치에서도 말만 번지르르한 후보자가 존재할 것이다. 신자는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도 닦기에만 전념하는 스님이 있을 수 있듯이 국민과 민족의 장래보다는 자신의 집권욕에 열광하는 후보자가 없을까. 경전은 “만약 임금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신하들도 다 청정해질 것이다”고 쓴다. 지금 웬 왕타령인가 할 게 아니라 이 글자를 대통령으로 바꾸고, 신하를 정치인과 국민으로 고치면 바로 오늘의 우리가 감내해야할 민주정치의 본보기가 된다.

아마 불교만큼 정치지도자의 자격에 대하여 거듭 논의한 경전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자비를 지도자의 으뜸가는 품성으로 꼽으면서 경전은 이상적인 왕이란 “이 국토에 사는 온갖 백성들이 언제나 밝은 법률에 의하여잘 다스려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굶주린자는 구제되고 가난한 자는 동정을 받으며 국민이 죄를 지었을 때는 공평하게 판결을 받아 억울함이 없게 하라”고 요약한다.

“나라의 불안은 몸에 병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설파하면서 그병의 주요 원인을 바로 통치자 자신에게 겨냥한 게 불교 정신다운데, 성큼나아가 “왕이 둔하고 슬기가 없어서 왕도(王道)를 모르고 정법을 행하지않은 채 멋대로 악을 짓는다면, 이런 국왕의 죄는 누가 다스려야 합니까?”란 질문에서 왕 스스로가 다스려야 한다고 못 박는다. 우선 자신의 힘으로 자기변혁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게 뜻대로 안되면 큰 지혜가 있는 국내인사들을 탐방하여 스스로의 허물을 씻기를 권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국민들의 오류나 잘못에 대해서는 극히 관대한 법적 처벌로 일관해 왔다는 점이다.

잘못은 왕 자신의 허물로 보고,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나무라지 않는 왕이야말로 위대한 지도자임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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