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처럼 쏟아진 노시인의 단상
민족시인 고은 씨가 새 시집 [순간의 꽃]을 냈다. 100여 수의 시가 실려 있지만 각각의 시들에는 별도의 제목이 부여되지 않았다.
시집 제목처럼 순간순간 꽃처럼 피어오르는 작가의 단상들이 짧게는 두 행, 길게는 5~6행 정도로 기록돼 있다. 이 시들 사이에서 어떤 일관된 법칙이나 연계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처음부터 작가는 그런 관계의 정립을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눈앞에 보여지는 현실과 그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선(禪)적 깨달음. 한편의 오도송을 쓰듯 시인은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시어들을 적어 내려갔으리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좀더 오래 시를 음미하다 보면 70을 바라보는 노 시인의 회상과 인간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그보다 더 따뜻한 애정이 묻어난다.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들녘을/ 물끄러미 보다/ 한평생 일하고 나서 묻힌/ 할아버지의 무덤/ 물끄러미 보다//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다’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 개의 물방울// 비가 괜히 온게 아니었다’
한 평생 줄곧 시어와 함께 뒹굴며 이제는 그 자신이 시가 되어버렸기에 한여름 소나기처럼 거침없이 쏟아져도 그 속에는 오래 묵은 술처럼 향기를 품고 있음이다.
저자는 저자는 “올해 들어 통 시를 쓰지 못해 마음고생을 해오다 오느순간 터져 나온 시들이 이 책”이라고 밝힌다. 그는 이제 시와 시어, 시인의 경계 마저 구분할 수 없는 그 어떤 경계로 들어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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