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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일기-절에서 먹던 누룽지의 추억

기자명 자용 스님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절에서나 맛볼 수 있는 누룽지나 제사를 지낸 과질을 한 두 쪽 얻어먹는 것은 옛날 신도님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절에서 누룽지를 얻어다 먹이면 밤에 이를 가는 아이가 이를 안 간다네요. 스님, 누룽지 조금만 주세요." "절에서 제사지낸 과질을 먹으면 무서움을 안탄다는데 …, 스님 과질 한 쪽 어떻게 안될까요."

쑥쓰러운 듯 살며시 손을 내밀며 미소를 띄우는 모습은 그러나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쌀 한 되박 이고 오솔길을 따라 '우~우~' 신호를 보내며 몇 번이고 쉬었다가 절로 올라오던 신도님들의 모습도 절집에서 차츰 자취를감춰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밀려든 물질적 풍요의 물결에 휩싸여 사찰에서조차 큰 솥에 불을 지펴 밥을 짓기보다는 전기밥솥이나 가스밥솥을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해졌고, 구수한 맛의 '절 누룽지' 먹던 일은 어느덧 구경하기 어려운 옛 풍경이 되었다.

물론 현대문명의 발달에 맞춰 절집도 변해야 하겠고,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는 분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신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옛날의 절집 풍경을 그리워하는 이가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문득 "세월이 흘러 삶이 편안해지고 편리한 물건들이 많아진다고 해도 마음은 가시방석이다"라는 노자(老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몰라보게 잘 살게 되었고,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행복해지거나 마음이 편안해진 것은 아니니 노자의 말은 마치 오늘의 일을 내다보고 한 말처럼 여겨진다. 이런 경우는 절집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다른 사찰보다 불사를 많이 해야 한다는 식의 이상한 경쟁이 생겨나고, 물질의 발달로 여기저기 신경을 쓸 일도 많아졌으니 버리는 공부를 하는 스님들로서는 오히려 수행환경이 퇴보된 셈이다.

깨달음, 행복,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것들은 비록 인정이 메말라가고 옛정경이 사라지는 시대에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왠지 주변 환경은 정반대로가고 있는 것같으니 고민스럽기까지 하다.

진정한 마음의 행복, 깨달음의 기쁨은 어쩜 누룽지를 섞어 구수하게 끓인 숭늉같은 삶에서 얻어지는 것은 아닐까. 부처님 오신날이 얼마남지 않은 이즈음 우리불자들만이라도 겉포장에 끄달리기 보다는 숭늉이나 누룽지처럼 구수한 옛 향기를 뿜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용 스님/평창 극락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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