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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칼럼-스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생들

기자명 임헌영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요즘 명사찰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해마다 멋진 신식 건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백이면 백 모두가 불사를 위한작업을 추진 중인데 그 중 상당수는 대규모 공사처럼 보인다. 지붕이 있는곳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는 석가여래 초기의 고난의 수행이 이제는 옛말이되고 말았는지 자꾸만 새로운 절이 웅장하게 들어서고 있다. 물론 반겨야할만한 일이다. 비교해서는 안되겠지만 8^15 이후 우리나라에 교회가 생겨난 것이나 그 대형화 현상과 견줘 말한다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얼마나 더엄청난 사찰을 지어야 조선조 시대 때 허물어져버린 유적을 다 복원시킬 수있을 지 아득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도량으로서의 사찰이 아니라 위엄과 권위와 부의 상징으로서 사찰이 초호화판으로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문화재복원이나 보존정책과 기술에서 눈살을 지푸리게 하는 일이 많은터인지라 사찰에 관해서만은 불교의각종 종단이 사명감에 입각하여 추진하지 않으면 후세의 비판을 면할 길이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찰의 복원과 중건은 권장할 만한 일일 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적극 추진해 나가야할 불사의 하나이다. 다만 대형화^거대화의 방향으로만 나가는현상은 마치 지난 날의 군사문화가 `아시아 제일'이나 `세계 최대 규모'의수식어를 지향하던 풍토를 받아들임이 아닌가 싶어 떨떠름하다. 명찰은 사찰의 크기보다 알찬 내용일 터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산사는 국토의 지기(地氣)를 돋우는 역할도 있음을 감안할 때 산보다 우람해 보이는 사찰이나사찰의 기운을 죽이는 거대한 탑의 건립 등은 그 사찰의 부를 과시할 수는있어도 민족의 영혼을 담아낼 사찰로서는 뭔가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불교계는 밖에서 볼 때 80년대를 고비로 엄청난 현대화로 대중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고 느낄 지경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도심지나 아파트단지로 사원이 들어서기 시작한 현상이라든가, 스님들의 설법이 현실화되어 가는 등 오늘의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인들이 점점 증대하고 있다. 그래선지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 세속적인 영화를 버리고 불도에 투신했었다는 기사를 읽을 수 있었는데, 어찌 그 뿐이랴. 아마 더 많은 엘리트들이 속속 불도에 입문했을 것이며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같은 한문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과 한국의 사찰을 찾노라면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중국의 사찰엔 그 엄청난 규모의 시설에 스님 찾기가어려우며, 일본에서는 마치 시민운동 단체나 되듯이 여러 유형의 선전물들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의 사찰은 도량으로서 가장 적합한 듯이 대개가 명산이나 국^도립공원을 끼고 그 산세의 기운에 걸맞게서있다. 어느 방식이든 다 저마다의 문화풍토에 어울리는 것이기에 함부로따르거나 비판할 필요는 없지만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서 가장 앞선 쪽은 그래도 일본이 아닌가 싶다.

시각에 따라서는 종교와 현실사회 사이에는 완충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으나 종교가 인간 구제의 사명을 띄고 있는 한 중생의 삶을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이런 뜻에서 감히 속세의 선비가 바라본 오늘의 한국 불교가 보다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길은 오직 중생의 삶속으로 깊숙히 침잠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바람이다. 절은 너무 멀리 있어 왔다. 기독교가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서 대중을 만나는데 비하여 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뜻만이 아니라 `설법'에서 현실성 곧 중생의 삶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얼마나 진하게 스며 있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사원의 크기나 탑의 거대화가 아니라 그 사찰이 지녀온 긴 역사를 불자들에게 신뢰감을 높일 수있도록 알려주는 작업일 것이다. 사찰을 찾아 가는 불자나 비신앙인들은 마치 어느 쇼핑장을 관람하듯이 무심코 그냥 지나기 마련이다. 안내표지판으로는 풀리지 않는 지식욕을 채워 주고자 하는 그 사찰의 연혁이나 역사, 고승들의 업적을 담은 책자 하나가 아쉽다. 사찰의 처마 자락과 탑이 높아지는 것에 못지 않게 그 사찰이 거쳐온 긴 역사와 중생들의 삶을 오늘의 중생들에게 알려 주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참된 불도란 사찰이나 극락에서만이 아니라 시장 한복판은 물론이고 정치판에서도 그 위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어려운 처지의 중생을 가진 스님들이야말로 구원의 손길을 뻗는데 얼마나 보람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오직 스님들의 몫이다.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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