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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의사’김연호 원장

축생 돌보며부처님 말씀 실천...“날마다 심우도를 그립니다”


계절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화사한 들꽃과 산색의 아름다움을 스쳐보며 마치 유람 길을 달려가듯 왕진을 다니는 행복한 수의사. 25년 여 세월 동안 자궁탈 식도경색 등 중병으로 고통받는 소의 수술을 수 없이 집도하며 진땀을 흘렸건만 일에 대한 어려운 기억보다 수술 후 마을 사람들과 흙 냄새 그윽한 시골방에 둘러앉아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마셨던 차 맛을 더 또렷하게 기억할 만큼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가꾸며 즐기는 사람.

충북 제천 진주동물병원 김연호 원장. 수의사 김 원장은 80년대 어느 대학 수의과 교수가 전국 200명의 현직 수의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유일하게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수의사 김연호, 그는 말 못하는 짐승을 치료하는 동안 그 소를 한 가족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웃 농민들의 애환과 고달픔까지 읽어 낸다. 때문에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돈이 많이 생기지도 않는 농사일을 소와 더불어 묵묵하게 해내는 농민들은 곧 그의 삶의 궤적을 수정하게 하는 스승이 되기도 한다.

“어느 때인가 한 밤중에 왕진을 청하는 전화를 받고 귀찮다는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을 보며 스스로 얼굴이 달아올랐었다”는 김 원장은 그럴 때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소와 농민이 나태해진 자신을 일깨우곤 했다며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된 연유를 주변에서 찾았다.

동물병원장 김연호의 삶은 소, 그리고 불교와 함께 한다.

소를 돌보는 일은 평생의 업이 되었고 불교는 자신을 담금질하며 살아가게 하는 지혜의 등불이 되었다.

그가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소를 알기 이전이다. 고교시절 건강 때문에 산사에서 지냈던 1년여의 세월이 그를 불문에 귀의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활동은 나이 쉰에 이르른 오늘까지 불교일을 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대불련 경남지부장(73년)을 지내면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을 근간으로 제천에 첫 발을 디딘 76년에 불교청년회 발족을 시작으로, 77년에 지역내 고등학교의 연합불교학생회를 창립하고 85년에는 조계종 제1회 전법사 품수를 받으면서 불교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후 불교청년회장, 학생회 지도법사, 거사림회장, 강천사 신도회장, 제천탄약창 군법당 지도법사, 우리는선우 제천지회장 등을 역임하며 제천불교 중흥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며 불자로서의 삶을 가꾸어 왔다.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불교일을 해댄 덕(?)에 92년 제7회 불이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그에게 이런 상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불교를 널리 홍포하고 불자들의 마음이 여유롭게 될까. 또 어떻게 해야 참다운 불교상을 제천 땅에 아니 이 나라, 전세계에 세울 수 있을까 하는 ‘화두’를 푸는 게 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도 ‘뭐하고 살았나’하고 지난날을 반추하며 ‘뭐하고 살아갈까’를 고민하고 있다.

수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얻어지는 수입이면 충분히 윤택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경제적 소득으로 윤택한 생활을 추구하며 살아가련만, 그는 편안함이나 경제적 안위에 자족하지 않았다. 몸이 고달프고 힘들면 쉬어갈 만도 할 법한데 좀처럼 쉬려 하지도 않는다. 매일 매일 ‘무슨일을 할까’ 하는 고민 속에 젖어 실천불교, 생활불교를 정착시키기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

“뭐든지 다 때가 있는 벱이다. 때가 주어졌을 때 단딩이 장신해야지, 늘 좋은 때가 있는 줄 알고 막살몬 평생 고생이데이.”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님이 김 원장에게 일러준 ‘인생’에 대한 정의이다. 생기는 것 없이 퍼내기만 하는 불교일이나, 소를 돌보는일에 게으르지 않는 자신의 생활을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김연호 원장.

그는 종교의 제1 덕목을 기도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신앙인이다. 세상을 떠난 모친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고 정법을 향한 신념을 견고히 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50일 동안 10만 배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매일 아침 집안에 모셔진 불단 앞에서 예불과 간경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저녁이면 먹을 갈아 ‘평생염불(平生念佛)’이란 글자를 10여 장씩 쓰고서야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본래 내 것이란 없는 법이니 회향하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김연호 원장은 이 시대를 밝히는 ‘생명의 등’이 되어 불자의 삶을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다.



문화재 사랑, 그리고 비우기



“대불련 활동을 하면서 전국의 사찰을 다닐 기회가 많았습니다. 당시에 처음 접한 불교문화재는 심금을 울릴 정도로 가슴깊이 각인 되었고. 그 때 이후로 한국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지요.”김연호 원장의 문화재 사랑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문화재에 대한 특별한 식견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아서 찾아다니고 눈으로 보고 즐기다 보니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도 깊어졌다.

때문에 인연 닿는 대로 모아온 소장문화재가 적지 않은 수준에 이를 때도 있었다. 지난 91년 12월 김 원장이 그동안 모아온 소장문화재의 대부분(시가 7억원 상당)을 국립청주박물관에 기증했을때 세인들의 칭송은 끊이지 않았다.

“본래 내 것이 없는 법인데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기증했을 뿐”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김 원장은 “소유하는 집착에서 벗어나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사회에 회향하고 나니 마음도 가뿐했다”며 ‘비우고 살기’에 대한 예찬론을 펴고 있다. 관심과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비우는데서 더 커진다는 것이 그의 세상사는 지혜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가족



세상살이에 독불장군은 없는 법. 김 원장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반은 역시 부인이다.

부인 권선 씨는 김 원장이 하는 모든 일의 내조자이자 곧 동반자이기도 하다. 불교 일을 같이 하는 것은 물론 기도도 함께 하고 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하나씩 나누어 맡았다. 큰아들 영돈 씨는 의과대학에, 작은아들 영종 씨는 동국대 불교대학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는 것.

이웃 사랑도 가족이 함께 한다. 집안에 항아리 하나를 놓아두고 매일 얼마간의 ‘불사금’을 모으는데 온 가족이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주변 사찰에 편액 달아주기 운동을 선우 회원들과 함께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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