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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하철도 999’

기자명 법보신문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 작품

영생을 버리고 가는 ‘인간의 길’





30대 초중반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일요일 아침에 방영되던 만화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요일 아침 모처럼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도록 만들었던 만화영화. 이제 나이를 먹어 정확한 방영시간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왜 하필이면 이런 시간에 방송하냐는 불평을 터뜨리며 문제의 그 만화영화를 보려고 무척이나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나곤 했었다. 그 만화영화의 인기는 대단해서, 당시에는 철저히 무명이었던 김국환이 부른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로 시작되는 주제곡은 소풍이나 운동회의 단골 레파토리였다.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의 ‘은하철도 999’가 바로 문제의 애니메이션이다.

‘은하철도 999’는 너무나 유명한 TV연작물이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내용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1978년 9월부터 81년 3월까지 2년 6개월간 방송되었는데, 당시 시청률은 15.5%였다도 한다. 철이(원래 이름은 호시노 테츠로이다)라는 소년과 메텔이라는 미모의 여인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안드로메다에 가는, 우주 여행을 다룬 내용이다. 매주 한 행성에 도착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종착지인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별을 향해 가는 것이다.

당시에는 재미있는 만화영화로 생각했는데, 지금 뒤돌아보면 무척이나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메텔이라는 인물. 그녀는 철이를 안드로메다에 데려다 주는 인물이지만, 그래서 철이가 처한 모든 어려움을 이기도록 해주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만든 곳으로 철이를 데려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곳은 인간에게서 기계를 움직이도록 하는 에너지를 뽑아내는 곳이다. 반면 철이는 영생을 구하러 안드로메다에 간다. 그의 어머니가 기계들에게 잡혀갔기 때문에 자신은 죽지 않으려는 것인데, 그를 데려다주는 메텔은 어머니의 이미지와 너무도 닮았다.

소재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많은 SF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기계와 인간의 싸움을 다루고 있고, 주제적으로 보자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으며, 장르적으로 보자면 로드무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세 요소가 많은 관계 속에 얽히고 설켜 있지만,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다.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인간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만약 당신이 기계가 되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기꺼이 기계가 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죽지 않는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인가.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이다.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서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기계와 결합해서 영생을 얻는다면 종교는 더 이상 존재의의가 없다. 그런데 기계와 결합한 인간에게는 과연 의미가 있는가. 안드로메다에 도착한 철이는 기계에 의지한 영생을 거부한다. 무의미한 영생과 인간다운 죽음 가운데 후자를 택한 것이다. 철이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헛된 욕심을 품고 여행했다. 즉, 헛된 망상이 철이를 가려 인간의 본분을 망각했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현실의 나를 깨우쳐가는 것, 그것을 통해 참나를 발견하는 것, 미련한 중생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긴 여행을 통해 철이는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일 수 있음을, 인간의 생노병사는 자연의 순리임을 깨달았다. 긴 여정이 결국 그에게는 수행의 길, 깨달음의 과정이 된 것이다.



강성률 애니메이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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