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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그리웁다

기자명 도법 스님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들판너머로 눈덮힌 천왕봉이 장엄스럽게 보인다. 농부의 발길이 끊긴 텅빈 들판에 겨울 바람만 불어오고 불어간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의연한 자태의 천왕봉을 바라보며 들판길을 걸었다.옷깃을 여미게 하는 세찬 바람결에 낙엽들이 날린다.

먹이를 찾아 들판에 내려왔던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겨울들판처럼허허로운 필자의 가슴에도 스산한 바람이 인다.

가슴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걸어가는데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쳐가는 무엇이 있었다. 바로 우리모두의 원초적 염원인 안식처로서의 고향에 대한 절절한 갈망이었다.

영원, 법열, 자유,<&26964>평화의 삶에 대한 바람이 하나의 그리움으로나타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들의 영원한 인간상이요, 고향인 부처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에 허허로운 가슴속 그리움을 채워줄 부처님의 모습을 살펴 봄으로써자신을 달래보고자 한다.

“세존이시여, 이 곳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시지요.”
“아난다야, 그 곳에서도 사람들이 우리를 욕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하겠지요”
“아난다여, 그래서는 안된다. 떠나더라도 소동이 가라앉은 다음에 떠나야 한다. 마치 전쟁터에 나선 코끼리가 화살을 맞고도 끝까지 참아내듯이우리는 그들에 대한 자애심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처님과 아난다의 대화는 지극히 평범하다. 어느 구석에도 특별하거나신비한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끄는 신비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진정가슴을 열고 깊이 음미해 볼일이다.

“비구들이여, 만약 사람들이 양날의 톱으로 자신의 손발을 자른다고 해서 그들에 대하여 악의를 품는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우리의 마음이 산적들에 대하여 분노와 증오로더럽혀지지 않도록, 우리의 입에서 친절하고 자애로운 말이 나오도록, 항상자애로운 마음을 지켜 분노와 복수심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 정법, 승가를 비난하더라도 그들에 대하여 증오하거나 원한심을 품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에 대하여 화내거나 불쾌하게 생각한다면 그로 인하여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방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다른 사람들이 삼보를 비방하더라도 그대들은 언제나 침착하고 자애로운 마음과 자세로 진실과 거짓, 옳음과 그릇됨을 잘 해명해 주어야 한다.”

어떤 상황일지라도 분노와 증오 따위의 악의를 품는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라는 한마디는 실로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어떤 이유이든 분노나 증오의 마음을 품는다면 그로 인하여 ‘자신의 정신적성장을 방해하게 된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얼굴을 들 수 없게 한다.

이 가르침 앞에서 오늘의 한국불교인들의 모습은 한 없이 남루하고 초라하다. 진정 한국불교는 살아있는가. 진정 우리는 불교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텅빈 겨울 들판의 한복판에 서서 엄숙히 자문해 볼일이다.

“라훌라야, 자애에 대하여 사유음미하라. 왜냐하면 이 자애의 힘으로 악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라훌라야, 연민에 대하여 사유음미하라. 왜냐하면 이 연민의 힘으로 잔인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라훌라야, 평등심에 대하여 사유음미하라. 왜냐하면 이 평등심의 힘으로증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라훌라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불교는 어디에 있는가. 불교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법당인가, 선원인가, 절간인가, 마을인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부처님께서는 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자신의 가슴, 그 어느때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불교가 된다고 설파하셨다.

우리들의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분노, 증오, 자만, 인색, 옹졸, 시기,질투 따위의 추악함을 쫓아내고 우리들의 가슴속에 연민, 자애, 겸허, 평온, 여유, 침착함의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는데 열정을 바칠 때 불교는 우리의 삶으로 꽃피는 것이다.

이는 한국불교의 현주소가 어디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물음이자 해답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부처님의 모습은 자애로움으로 가득하다. 따뜻함과 평화로움이 흘러 넘친다. 지극히 부드럽고 잔잔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현혹되거나 흔들림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자애로움이 부처님의 피가되고 살이되고 인격이 되어있다. 분명 부처님은 오늘의 우리들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들도 참선, 간경, 참회, 기도를 하는데 왜 부처님과 같은 눈빛, 표정,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한해를 마무리 짓는 겨울 한복판에 서서 냉철한 물음을 제기해 볼 일이다. 특히 한국불교를 걱정하는 모든 분, 그리고 이 나라 불교지도자들께서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기를 향하여 이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우리가 하고 있는 주장과 외침과 업적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것임을 살펴야 할 것이다.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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