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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정론-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서

기자명 희암 스님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불교가 지닌 이미지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불교계 안에서 살다보니, 스스로의 감각이 자꾸 무뎌지는 것같은 느낌을 갖는다. 아무래도 우리 집안에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자연이 말이나 생각도 불교적일 수밖에없다.

가끔 전혀 이질적인 이들과 만나고 이야기할 때, 비로소 불교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선 일반인들은 불교에 대해 불화의 집단이라는 인식이강하다. 현대불교의 질곡이 빚은 참담한 인식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평이 많다.

다양한 사회구조의 특속에서 신속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또 불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현대사회속에서의 적응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스님들의 경우, 옷이 다르고 머리모양이 다르고 음식을 가리가 때문에 서로 '불편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물론 그 하나하나의 비판들은 해묵은 쟁점들이고,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든지 답변할 수 있는 논리적 구조를 갖고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인식을 변환시킬 수 있는 우리의 노력이 부적하다는 점이다.

그 비판들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세속과 불교는 평행선이 될 수밖에 없다. 제각각 자신의 길을 걷는 옹고집쟁이가 되어버리는것이다. 현대불교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 이 부분이다. 이제 우리는 세속적도전에 대하여 응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의 회복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이 너무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물론 정직 하지못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대체적인 경향이다. 한국인들은 허세가 강하고,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강한 컴풀렉스가 있다.

해마다 입시철이되고, 수석을차지한 이들의 환한 모습과 인터뷰기사가 신문을 장식한다. 그런데 그 대답은 획일적이다. 잠은 여덟시간을 꼭 잤고, 과외는 해본 적이 없으며,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해서 이 영광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나는 오히려 솔직한대답을 기대한다. 대학에 가서 과학자가 되고 교수가 되겠다는 포부 보다는,이제 실컷 놀아야겠다는 대답이 훨씬 인간적이고 정직하지 않을까.

무슨무슨 때가 되면 종교지도자들의 메시지가 실린다. 은연중에 종교간의수준을 가늠케 하는 경연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경우에는 그 뜻을 이해하기가 퍽 난감하다. 오늘의 언어와 감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라면 그것은 골동품과 다르지 않는 법이다.

나는 법어의 스타일을한문위주에서 우리 말로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내용도 미래지향적인 안목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 솔직하게 오늘의 문제에 접근하려는 원을 품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마음한번 깨치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보살의 삶을 살기위한 노력들이 전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고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운 모습들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외면 당하고 있고 바깥 세상사람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주된 원인은 불교지성인의 양산에실패했기 때문이다. 한 자리 차지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볼 때마다 울화가치민다. 그 주된 원인은 불교지성인의 양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자리 차지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도대체 불교신자라는 이는눈을 닦고 찾아보아도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더욱 화가 나는 일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서는 "사실 나는 불교였는데"하는 토를 다는 일이다. 분명히 대한민국에 불교신자가 많다는데 도무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혹시 뷸교에 대히 측은한 감정, 막연한 애정을 가진 이들까지를 전부 포함해서 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불교가 세계화되려면, 우선 우리나라 안에서 정법의 믿음이 지배적 경향으로 전개 되어야만 한다. 사이비를 방불케 하는사법신앙을 가진채 불교를 향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며칠전 신라호텔에서 모임을 가진 재가회의는 이런 관점에서 상당히 기대를 모으게 하는 단체이다. 일각에서는 이 모임이 압력단체가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있는 모양이지만, 결코 정치색을 띠어서는 곤란하리라고 본다. 오히려 정법을 사모하는이 시대 지성들의 함성으로서, 건강한 불교를 이루는 밑천이 되어야 한다고생각한다. 축가와 재가는 수직의 상하개념이 아니라 보완적 수평관계이기때문이다.


희암 스님 /부산녹아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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