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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몸

기자명 법보신문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인간에게 나고 죽는 법칙이 없었다면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잔인하고 무자비했을 것이다. 늙고 병드는 법칙이 있기에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뒤돌아 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본성을 회복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은 임종을 맞을 때 가장 진실하고 진지하다고 한다. 육신이 건강할 때는 본능적 욕망과 아울러 인연에 얽매인 이해관계로 인해 진면목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짐승과 다른점은 잘못을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기능이 없다면 평범한 짐승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노릇 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중노릇하는 일은 사람노릇하는 일보다 몇배 정진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구제적 책임을 다해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화경 捨身品에는 누구나 중생을 위해 몸을 버리면 진리의 몸을 이룬다고 했다. 평범한 인간의 육신은 생멸이 있으나 진리의 몸에는 나고 죽음이 없다. 그러나 이웃의 아픔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헌신은 실천하기 어렵다.

며칠전 23세 청년이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이르자 부모들은 평소 아들의 선행을 오랫동안 기리기 위해 몸전체의 장기를 기증하여 죽어가는 세사람의 목숨을 살렸다고 한다. 육신에 집착되어 있는 사람이나 육신을 영혼의 집으로 고집하는 사람들은 비록 죽은 시신이라도 버리기를 꺼려한다. 육신은 허망하고 소멸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젊은 청년은 자기를 버리고 사람을 살렸을 뿐 아니라 진리의 몸을 얻은 것이다. 선행 가운데 이처럼 아름답고 용기있는 선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젊은 청년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권력 있고 벼슬 높은 안방 주인들의 고급 옷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우리들의 내부를 밖으로 들어낸 상태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삭막하고 황폐해진 것 같다. 그리고 육신을 허망하다고 큰소리치는 스님들도 몸을 버리고 진리의 몸을 얻는 보살행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모양만 그럴듯한 성직자가 우리주위에는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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