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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답게 사는 것

기자명 법상 스님

자기 자신으로써 만족하는 삶

비오는 산방 다실에 앉아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추적 추적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홀로 차 한 잔 마시는 즐거움은 산사에 사는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이럴 때는 홀로 이 대자연의 연주를 감상하며 차향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요즘처럼 이런 비가 몇 일이고 내내 쏟아지는 날은 이따금 맑은 차 한 잔 함께 나눌 도반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맑은 수행자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그러나 그 향기는 ‘수행자’라는 거창한 이름에서 오는 향기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써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모습에서 온다. 제 스스로 수행자라고 티를 내거나, 스님의 상에 갖혀 거만하고 우쭐거리지 않고, 자신에 대한 아무런 한정도 짓지 않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써 만족하는 자유로운 사람, 그런 수더분한 사람에게서 되려 참 수행자의 향기는 풍겨나오는 것이다. 그저 자기 자신이면 되지 거기에 무슨 무슨 상을 덮씌울 것도 없고, ‘수행자’라느니, ‘스님’이라느니, ‘포교사’라느니 하고 이름 붙여 놓고 거기에 제 스스로 갖혀 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요즈음 이따금씩 ‘수행자’ 병에 걸리고, ‘스님’ 병에, 또 ‘법사’니 ‘포교사’니 하는 병에 걸려 있는 어리석은 이들을 본다. 불쑥 불쑥 찾아와서는 자신이 얼마나 수행을 잘 하고 있는지, 절을 참선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자기 자랑삼아 늘어 놓거나, 혹은 ‘수행자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을 본다. 때때로 자신 입장에서 보면 수행 안 하는 사람이 참 어리석에 보인다고 하면서 제 수행과 불교 공부 편력을 늘어 놓는 사람을 보면서 참 수행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참 수행자는 ‘수행자’라는 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수행하면서도 ‘내가 수행한다’는 그 생각 조차 놓고 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집착을 다 놓고 간다고 하면서 ‘놓고 간다’는 한생각에 걸려 있으면 그 사람은 놓음을 되려 잡고 가는 사람이고, 그것이 오히려 더욱 큰 집착을 가져온다. 놓고 가면서 그 놓는다는 한생각도 다 놓고 가야 하고, 수행하면서 수행한다는 그 집착도 다 놓고 가야 한다.

수행을 하는 사람이 수행 안 하는 사람을 볼 때 우쭐한 마음이 생긴다거나 나 잘난 마음이 올라온다면 나는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상이 남아 있는 것. 그런 사람은 제 스스로 수행자라는 틀에 얽매여 있는 어리석고도 위험한 사람이다.

수행자라고 상을 내는 것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수행자라는 것도 하나의 분별심일 뿐. 수행자라는 분별이 있으니 수행자 아닌 사람을 얕보는 마음도 생기고, 나는 수행 안 하는 사람하고는 다르다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수행자다운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 그저 평범한 내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행자는 이래야 한다는 틀이 정해져 있다면,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수행자답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한다면 그 때 우린 참 수행자를 잃어 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수행자라는 것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누구 처럼도 아니고, 깨달은 사람 처럼도 아니며, 어떤 스님 처럼도 아닌, 누구 눈치를 볼 것도 없고, 어떤 관념의 틀에 사로잡힐 것도 없고, 그저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수행자의 참 모습이 아닐까.

나답게 사는 것이 바로 수행자답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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