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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들을 맞으며

기자명 윤원철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금융대란이 결국 국제통화기금의 개입으로 이어지고 그 대가로 이른바 경제 주권이 박탈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업보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경제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야 여러 가지 변수들을 굉장히 복잡하게고려하겠지만, 내게는 그저 무엇보다도 우선 그 동안 우리가 거품에 반사된무지개에 정신없이 도취해 있었던 데 대한 응당한 과보로 보인다. 안타까운것은 그 도취의 세월 내내 바로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경계하는 이야기가 무수히, 그리고 간절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깨어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추락을 두고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제발 좀 보라고 열심히 가리키는 손가락이 많았는데도 쳐다보지 않았다. 일본경제에 거품이 빠지면서 갖가지 고통이 엄습하고 있다는 보도들도 덤덤히넘겨 버렸다. 더욱이 올해 초부터는 파국의 징후가 연이어 눈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했고 몇 달 전부터는 동남아 여러 나라에 난리가 나는 것을 보았다.그러나 입으로는 이제 우리에게도 당장 코앞에 닥쳤다고 하면서 뭐 하나 때맞춰 적절하게 취한 조치가 없었다. 국제통화기금이 먼저 나서서 돈 빌려주겠다고 해도 아니다, 아직은 필요 없다, 하더니 단 몇 시간 뒤에 예, 좀 빌려주십시오, 그것도 며칠 안에 빨리 빌려주십시오, 하였다. 우리 정부가 그렇게 형편없이 방만하고 근시안이다.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막 타박하는 말을 했다는데, 그런 말 들어 싸다.

정부만 방만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한 채 야합하였다. 고소득층은 이루 말할 것도 없지만 소위 중산층, 저소득층 할 것 없이일반적으로 너무 방만한 소비생활을 구가하였다. 이제 우리는 조용히 반성하고 각오를 다지고 준비를 해야 한다. 궂은 날을 위한 준비를 맑은 날에미리 못하고 날뛰기만 한 점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아야 한다. 86년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역사상 처음이라던가, 백 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낸 적이있었다. 그 뒤로도 그런 일은 다시 없었던 것으로 안다. 아무튼, 그랬더니당장에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풍성하고 흥청대는 것이었다. 참 의아했다. 그 동안 매년 적자를 냈으니 백 억 달러 흑자 한번 내 보았자 외채 갚고 나면 흔적도 없을 텐데 어째 저럴까? 국제수지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그런 부분만은 분명히 너무도 천박했다. 우리가 매양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국가의 경제력에 걸 맞는 수준보다 몇 배 규모를 구가하는 소비생활이 이 지경으로 널리 보편화된 나라가 이 지구상에 다시 또 있을까 의심스럽다. 이런 파국을 맞지 않고 계속해서 승승장구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절약 운동이 우르르 끓어오르는데, 조금 형편이 괜찮다고 펑펑 써버리느라 우르르 들끓던 그 얄팍한 양은 냄비, 이 운동도 바로 그 냄비에서끓어오르는 것은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마치 어디하늘나라에 있다가 갑자기 내려온 듯이, 지금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에대해서는 책임이 없고 자기들이 집권하면 금방 다 해결하겠다고 각자 목청껏 떠벌이고 있다. 든든한 미더움을 주기에는 너무 황당하고 시끄럽다. 유권자들이 얄팍한 냄비이기를 바라고 있다. 싸잡아 휩쓰는 바람몰이가 아니라 세세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냉정하게 따지며 대처해야 할 시점에, 아무리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지만 제발 좀 조용히 해주면 좋겠다.

어쨌든 잘 됐다. 이 악착스런 민족은 틀림없이 다시 추스리고 일어설 것이다. 패배감이나 억울한 심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일이 아니다. 궂은 날에는 맑은 날을 내다보며 헤쳐나갈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앞으로 맑은 날을 맞더라도 다시 이렇게 천박하게 굴지는 말아야 한다.


윤원철/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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