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헌영 칼럼-'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꿈

기자명 임헌영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초겨울 눈이 되지 못한 찬비에 덕숭산은 움츠리고 있었다. 젖은 낙엽들은 바람에 날릴 수 조차 없어 구겨진 채 골짜기 구비구비의 1200 돌계단에서 짓밟히고 있었다. 몇 번 째였던가, 이름만으로도 푸근한 수덕사를 찾은게. 갈 때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절이 여류문인 김일엽의 대명사처럼 굳어져 버린게 못내 서운함을 느끼곤 했었다. 차라리 그녀의 스승 송만공(宋滿空) 스님을 기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때문에 나는 굳이 일행이 힘겨워 하는만공탑까지 궂은 비를 맞으며 올라가야 한다고 우겼다. 누군가는 만공 스님의 명성에 비해 그 탑은 너무 초라하다고 샐쭉했다. 나는 산 전체가 탑인데잘못 보시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탑 뒷면에 새겨진 글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세계일화 백초시불(世界一花 百草是佛)”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란 말을 새겨 보노라면 탑 그 자체만이 아니라 돌계단 모두가, 아니 계단 옆의 바위와 돌과 나무와 풀과 물 전체가 만공 스님의 눈에는 소담스런 한송이 꽃이자 부처로 보였을 터이고, 인간의 행위 모두가 아름답게비쳤을 것이다.

나는 만공 스님의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이란, 젊은 여자 허벅지를베야 잠이 온다는 대승적 초절을 존경한다. 그러나 만약 스님이 여색의 파계만을 일삼았다면 어찌 숭앙하겠는가. 그는 비록 미수에 그치긴 했으되 일제의 국권침탈과 강입에 항거코자 잠깐이나마 총독을 살해할 계획을 실천에옮기려 했었다는 일화때문에 그의 기행이 재평가를 받도록 만든다.

대체 절이란 무엇이며 누가 지켜야 할까. 절이란 도량(道場)으로 붓다정신의 보루일 터이고, 이를 지킴으로써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전수해 줄 수있는 근거지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리라. 수덕사를 중창한 만공 스님의 뜻도 바로 그러했을 터인데, 만약 어떤 스님이 파계와 방일과 무능력으로 한사찰을 계승·수리·보유하지 못한 채 허물어지게 방치해 버렸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와집 몇 채를 파손한 정도가 아니라 붓다의 정신을 파손하고 중생의 구제를 포기한 죄에 해당되지 않을까.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절의 보존임무는 스님에게 있기에 어떤 손실이나훼손의 책임도 스님의 몫이다. 예컨대 한 스님이 무절제와 어리석음으로 절을 망쳐버린 뒤 불자들에게 “왜 내 절을 이토록 만들었오? 이제부터는 내절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함께 허리띠를 졸라 맵시다”하고 염불을 한다면그 목탁소리에 효과가 있을까. 아니, 되레 불자들을 향하여 “왜 나에게 너무 시주를 잘하여 나를 이토록 타락하도록 만들었오!”라고 준엄하게 꾸짖으며 “내핍과 절약”을 외친다면, 그래서 “내 빚을 보살님들이 갚아주오” 한다면 말이 될까.

지금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다. 꼭 불난 호떡집 같은데도 책임질 사람이없는 것 까지는 좋은데 끌 사람도 안 보이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 보따리 하나 끄집어 내어올 용자도 안보인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참회를 지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그 경지에 이르면 해탈과 구원이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지금 우리는 단 한 사람의 참회자도 없으니 구원의 전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 지 막막하다.

다 잘했는데 왜 경제가 이 꼴일까. 언제나 그랬다. 총을 쏘라고 명령한사람도 없었는데 총알이 튀어나가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 않았던가. 성수대교도, 삼풍백화점도 원천적 책임 부재였었고 참회가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부고속전철 역시 바로 그 전철을 밟고 있지 않는가. 잘 나갈 때는 정치·경제인들이 자신들의 치적이라고 일방적으로 선전했었는데, 삐긋하자 국민과 노동자의 잘못으로 돌리고자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한다. 경기 좋을 때는 자기들 끼리만 즐기더니 궁해지니 고통을 분담하자는격인가. 그 뿐이랴. 정치는 경제를, 경제는 정치를 서로 나무라기만 할 뿐자신이 참회할 여지는 추호도 없어 보인다. `개혁'을 외치면서도 자신은 달라질 엄두도 내지 않으면서 상대만을 바꿔 보려고 용을 쓰고 있는 모습은 마치 `바담풍' 선비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같은 중생이 더욱 억울한 것은 `국민 모두가 공범'이란해괴한 논리를 펴는 언론매체들 때문이다. 대체 보통사람들이 무슨 사치와낭비와 방탕을 했던가. 그런데도 모든 언론매체들이 왕왕 떠들어대니 요새는 모든 사람들이 진짜 국가경제 파탄 공범이나 된 듯이 주눅이 들어 어깨가 축 쳐진다. 마치 덕숭산 돌계단에 짓밟히는 물묻은 낙엽꼴이다. 방탕으로 집안을 풍비박산 시켜버린 주정뱅이가 어린 자식에게 “너 학비 대느라고 애비 고생했으니 이젠 공부 때려 치우고 술값이나 벌어 들이라”는 불호령을 듣는 기분이다.

악과 위선도 너무 당당하면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선지 국민대중들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주눅든 채 “미워도 다시 한 번”이란 향수에 젖어아직도 `설마 나야…'를 복창하며 그 좋았던 어제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겨울산에 봄은 언제, 어떻게 오는가. 그 낙엽이 대지의 거름이 된 때라야 봄은 돌아와 세계가 하나의 꽃이요, 백가지 풀이 부처로 되살아날 것이다. 낙엽이 아직도 꽃 시절의 추억에만 젖어 있는 한 봄은 멀리라.


임헌영 칼럼/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