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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과 자연 5 - 양산 천성산 내원사

기자명 남배현

희귀식물의 寶庫 천성산 화엄벌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물봉선 등 멸종위기종 서식
원효대사가 강설한 곳…천연보호구역 지정 시급

경남 양산 내원사(주지 혜등 스님)는 812m 높이에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계곡도 그리 많지 않은 경남 양산의 천성산 초입부에 나즈막히 자리잡고 있다.

양산 내원사에 대해 사람들은 대개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원 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원사를 둘러친 천성산 정상부에 원효대사가 금북을 치며 《화엄경》을 강설한 화엄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아울러 화엄벌이 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산지 늪이라는 것은 인근 사찰의 불자(佛子)조차 알지 못한다.

천성산 입구에서 6km의 맑은 계곡을 끼고 한 시간 남짓 걷다 보면 내원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일상을 보내고 수행하는 곳이라고 보기에는 빠듯해 보이는 규모다.

“꾸준히 증가하는 관광객들 때문에 수행환경이 침해당하는 정도가 해가 갈수록 더해요. 하지만 이만큼 좋은 수행 환경을 갖춘 천연도량도 없을 것입니다. 수행하다 틈틈히 화엄벌을 오가며 산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원사 주지 혜등 스님은 “욕심없는 수행자의 삶이 곧 환경 보존을 위한 생활”이라며 “내원사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오염원은 사(寺) 내에서 처리한다”고 말한다. 스님은 “자연 발효식 화장실의 오물을 1,000평 규모의 텃밭에 거름으로 사용, 오물이 산의 계곡으로 유입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천성산을 오르는 길은 내원사 공양간을 지나 대나무 밭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내원사의 대나무 밭에서 천성산을 바라보면 소나무나 참나무 등 우리나라의 보통 산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만 보인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지나기도 어려울 정도의 등산로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천성산은 털진달래, 산초나무, 개옻나무, 조록싸리, 서어나무, 굴참나무, 꿩의다리, 갈퀴덩굴, 쑥부쟁이 등 평소 듣도 보도 못한 식생(植生)을 토해낸다. 녹색연합 김민하 간사는 “다양한 식생과 함께 족도리풀, 참취, 억새, 실새풀 등 초본층이 거의 원시상태로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성산의 녹지자연도는 8등급 이상의 천연림”이라고 평가한다. ‘녹지자연도’란 전국의 식물군락을 등급화한 것으로 등급이 높을수록 보존 상태가 빼어나다. 녹지자연도는 1등급에서 10등급으로 나누며 10등급에 해당하는 식물군락지로는 백두산 고(高)층 지대를 들 수 있다.

천성산 7부 능선 이후로는 앞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오를 정도로 가파르다. 약간의 바람에도 억새가 서로의 잎을 비비며 내는 ‘스르, 스스르’하는 소리를 낸다.

내원사를 떠나 한 시간 정도 오르자 9만여 평의 넓은 들에 평평한 억새 군락이 춤을 추는 모습이 눈에 띈다. 원효 대사가 1천여 명의 납자를 운집해 놓고 설법했다는 화엄벌이다. 화엄벌을 바라 본 순간 김민하 간사는 “식생 관련 서적이나 보고서를 통해 보아왔던 산지 습원은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습지도 중요하지만 이런 고지대의 습원에 이탄층(泥炭層 :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의해 죽은 식물이 섞지 않고 쌓인 곳)이 발달했다는 점은 생태학적으로도 주목할만하다. 식충식물이 자랄 수 있는 자연 조건을 고루 갖추었기 때문이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 반드시 보존해야 할 가치있는 지역인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 보고된 우리나라의 고층 습원지는 강원도 양구 대암산 용늪과 울산시 정족산 무제치늪, 경남 산청군 왕등재늪, 경남 양산시 취서산 단조늪 등 4군데에 불과하다. 화엄벌 산지 습원은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고층 습원지에 해당된다.

화엄벌을 뒤덮은 노릇노릇하고 검붉은 색을 띤 억새군락 사이에는 은난초를 비롯한 미꾸리낚시, 고마리, 족도리풀, 물매화가 살포시 꽃망울을 터뜨려 흡사 철(季節) 이른 봄을 연상케 한다. 천성산 화엄벌 답사에 몰두한지 40여 분이 지났을까. 답사팀의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쑥부쟁이 등 … .’ 억새 숲에서 고층 습원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식충식물과 습원식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들 식물은 97년 산림청이 발표한 멸종위기식물이거나 희귀동·식물거래방지협약 대상 종들일 만큼 보존가치가 높다. 김민하 간사는 “화엄벌 인근에 있는 공군부대를 가리키며 오염물질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에 군부대를 철거하고 이 지역 전체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 정확한 생태조사를 벌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천연보호구역 지정을 위해 내원사와 녹색연합이 함께 환경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정밀 조사를 위한 지원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식충식물과 습원 식물이 자라는 화엄벌은 천성산의 정상부임에도 불구하고 푹신한 이탄층 틈으로 용천수를 뿜어낸다. 용천수가 흐르는 물 웅덩이에서는 물자라가 수중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빠삐 움직인다. 그러나 멸종 위기 식물인 끈끈이주걱과 억새 사이를 헤집는 물자라는 인간들에 의해 훼손된 웅덩이를 힘겹게 넘나들고 있었다. 희귀 식충 식물을 채취하기 위해 어지럽게 억새를 휘저은 흔적 때문이다.

화엄벌이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 9월 식물학자 정우규(46·식물분류학) 박사와 사진작가 김종호(47)씨에 의해서다. 각 언론사에서 화엄벌의 희귀식물이 자란다는 사실을 보도한 후 등산객의 발길이 더욱 잦아진 것으로 미루어 화엄벌의 훼손 흔적은 식물 채취를 목적으로 산에 오른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의 무지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습원지 여기저기에는 뿌리 채 뽑힌 끈끈이주걱과 습원지 곳곳을 마구 밟은 인간의 발자욱이 눈에 띈다. 무지한 인간의 욕심이 멸종위기의 식물을 ‘멸종의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현장인 것이다.


글·남배현 기자 사진·황도 기자
도움말·녹색연합 김민하 간사

■천성산 화엄벌의 귀한 손님 끈끈이 주걱·이삭귀개

끈끈이귀개과 끈끈이주걱은 햇빛이 잘 비치는 산성의 습지와 이탄층이 발달한 곳에서 서식하는 식충식물이다. 녹색식물임에도 불구하고 곤충을 끈끈한 액체로 포획, 질소 영양분을 곤충에서 얻는다. 잎이 변해서 된 선모는 중앙쪽은 짧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길어진다. 선모의 끝에는 끈끈한 점액이 분비된다. 점액을 이용 곤충을 잡는 끈끈이주걱은 점액에 달라 붙은 곤충이 탈출하려고 움직이면 더욱 강하게 감싼다. 식충작용이 가장 왕성한 시기는 5∼6월이다.

통발과 이삭귀개 역시 식충식물이다. 땅속 줄기는 실 모양을 하고 있으며 뿌리에 몇 개의 벌레를 잡는 주머니가 있다. 꽃 줄기는 높이 10∼20cm로 8∼9월이며 자줏색 또는 푸른색의 꽃이 핀다. 중부 이남의 고층 습지에서만 자란다.

한국에서는 8개 종의 식충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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