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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현장-법안정사 부부법회 법장스님 법문

기자명 이창윤
  • 동정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긍정적 사고가 복된 삶 일구는 씨앗”
깨달음의 목적은 행복…발상 전환해야

오늘의 주제는 ‘21세기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마음먹기 따라 가장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늘 밖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우리는 무조건 부수고 허물어 새 것을 만들어 가지면 되는 줄 압니다. 이런 무조건적인 발전주의는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자연을 사정없이 파괴해서라도 행복을 얻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이 무조건적인 발전주의는 산업사회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후 현실은 어떻습니까. 자연파괴, 환경오염, 대기변화 등 인간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예로부터 정이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이사 와도 누가 왔는지 관심 없고, 이사 가도 누가 갔는지 관심 없습니다. 이런 각박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현실을 개혁하고 변화시켜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온 인류가 바라던 개혁과 변화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전하고 개혁이 되었으면 행복해져야 하지만 인간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치유의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자연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깨달음이란 것은 본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은 본래 청정합니다. 거기에는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습니다. 그 더럽고 깨끗함이 없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의 목적은 행복에 있습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자기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자기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분별심이 생기게 됩니다.

화엄경에 보면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중생을 뒤집으면 부처요, 부처를 뒤집으면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은 중생이고, 부처는 부처라는 관념을 바꿔버리지 않으면 21세기는 고통스러운 세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졌던 사고를 뒤집어 봐야 합니다. 기와집 지었으면 좋겠다, 돈 벌었으면 좋겠다. 처자식 잘 얻었으면 좋겠다와 같이 누구에게 줄 생각은 안하고 내가 다 가져야겠다는 탐심을 텅 비워 버려야 합니다. 욕심 내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하는 온갖 번뇌망상과 분별심을 집어던지고 그 빈 자리를 저 맑은 허공과 같이 해야 합니다. 악한 마음이 생기면 녹이 쇠를 먹듯이 우리를 허물어뜨릴 것입니다. 악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걱정 없어, 나는 자신 있어, 나는 멋있게 살 수 있어, 나는 잘 살 수 있어 하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생활과 환경 속에서 그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결과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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