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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너버머의 자가당착

기자명 공종원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최근 신문들은 `문명의 법정'에 끌려나온 하버드출신 `반문명 테러리스트' 테오도르 카진스키가 `자신은 결코 미치지 않았다'고 외쳐댔다고 전하고있다. `유너버머'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이 지성적인 테러리스트는 극형을 면하기 위해 변호인이 자신을 정신이상자로 몰아갈 것이라는 소식에 `그같은 비겁한 수단에 의존할 수 없다'며 강력히 저항한 것이다. 이에 그치지않고 그는 `자신의 관선변호인들을 교체해 달라'는 요구가 기각되면서 감방에서 자신의 속옷을 이용해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런 행동으로 보면 카진스키는 대단한 신념가인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저지른 살상행위가 자신의 말짱한 정신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것인 만큼 그에 대해 일체의 책임을 지고 죽겠다는 가상스럽게도 느껴질 정도다.

그렇지만 카진스키의 행동이 과연 정상인의 행동이고 반문명 사상가의 테러행위인가 아니면 과대망상증 환자의 광란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것을 가리는 일은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실제 세계인들은 지난 17년 동안 사제폭탄이 들어 있는 우편물을 과학기술자들에게 보내 무려 26명의 사상자를 낸 그의 범죄에 대해 고독한 선각자취급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테러리스트로 평가하기도하는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카진스키가 스스로를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인간자유의 절대적 옹호자로 자처한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이후 인간은 과학기술에 의해 지배당하는 노예로 전락했기 때문에 인간성을 파괴하는 핵심요소인과학기술체제를 무너뜨려 인간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점에서 그는 스스로 명문 하버드대 출신이며 버클리대 종신교수 자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시골에 움막을 짓고 전기도 수도도 없는 환경에서 근 20여년 동안 홀로 살기도 했다.

이것만이었다면 아마도 카진스키는 정말 산업사회의 과학기술 지배에 대항해 용감히 싸우는 위대한 현대사상가라고 평가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협박수단을 통해 뉴욕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등 신문에싣도록 했던 `유너버머 선언·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주장자체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그의 신념에 대한 동조를 할 만한 여지도 충분했다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학자 등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에게 폭발물을 넣은 우편물을 보내 수십명을 살상했다는 것은 오직 광란행위요 범죄행위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가 정말 과학기술을 증오했다면 사제폭탄도 만들지 말았어야 할 것이고 그가 정말 순수한 인도주의자였다면 다른사람의 자유를 위해 그들의 인간적 자유를 침해하는 파괴행위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파괴한다고 바로 그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대안적인 사회가 그냥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점에서 유너버머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의 정신을 미리 알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가 자연속에서 명상에 잠기며 수행자적인 검약한 삶을 이어간 점은 부처님의 수행정신을 뒤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부처님이 분명하게 가르친 폭력부정, 절대 평화의 정신을 터득하지 못했던것 같다. 증오는 증오로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폭력은폭력을 낳을 뿐이란 점을 그는 알지 못한 것이다. 사회에 대한 믿음, 과학기술에 대한 증오는 오직 자비와 지혜의 삶에 의해서만 완전하게 극복단절된다는 것을 유너버머가 깨달았으면 싶다.


공종원/조선일보 논설위원,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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