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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의 깨달음과 교수의 깨침 [20]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오히려 지난 시기 때보다 잡념과 망상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지난번멋모르고 덤벼 들었던 정진 때에 간간히 느꼈던 망념사이의 적정의 경지조차 그꼬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음력 시월 보름에서 시작해서 이듬해 정월 보름까지 계속되는 그해 동안거내내 나는 계속 망상과 망념 사이에서 실의와 좌절 그리고 울분속에나 자신을 한없이 저주해야 했다.

도무지 공부의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까짓 좌선 무엇때문에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동안거를 넘겼던 것은 알량한 체면때문이었다.

해제가 되어 우리 토굴로 돌아 왔을 때 나는 안팎으로 형편 없이 구겨져있었다. 내 얼굴만 보고도 사정을 짐작을 하셨던지 은사 스님은 아무 말씀없으셨다.

그런데 여름 안거철이 되자 은사스님은 나에게 다시 선방으로 들어가라고명령하셨다. 그냥 우리 절에서 하겠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셨다. 그래서 그해여름 찾은 곳이 보림선원이었다. 동안거를 지낸 먼저의 그 선방으로는 다시가기가 죽어도 싫었기 때문이다.

보림선원은 또 그 가풍이 달랐다. 다소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대중들끼리 얘기도 나눴고 선을 지도하는 조실 스님도 자상한 편이었다. 거기서공부하던 시기 나는 선의 새로운 경지를 알게됐다.

지금도 경이롭게 생각하는 `방죽을 쌓으라'는 가르침이다.

분개심으로 모기가 바위를 뚫는 듯한 각오를 지니라는 말이다. 셋째가대의정으로 철저한 의심을 말한다. 망설이거나 주저 하지 말고 끝까지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망상을 오히려 끌어 들이는 방죽 쌓기는 분별지에 의한외도라고 질책 받을 법한 것이었기에 가슴속에 감추고 있는 비밀이었던 것이다.

얼만큼 방죽에 물이 채워져 찰랑 찰랑 해졌다고 느껴 졌을 무렵 나는 엄청난 희열의 적정의 순간을 맛볼 수 있었다. 조금만 강렬한 물줄기가 들어온다면 이제 바야흐로 방죽이 펑하고 터질 것이라는 기대가 온몸에 용솟음치고 있는무렵이었다. 그러가 내 방죽으로 들어 오는 물줄기는 무자화두와관련된 의심의 시냇물이었지만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었다.

왜 무라고 했을까하고 화두를 의심해 들어가는데 난데 없이 내 마음속에난데없이 촛불이 한자루 환하게 켜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너무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면서 세상이 원래 어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어둠이촛불로서 밝혀지는 것처럼 나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드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의 화면을 보는 느낌이면서도 내가 화면에 들어가촛불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한 도저히 차원을 달리하는 광경이면서 체험이었다.

그때 내눈은 앞자리에 앉은 도반의 등 아래쪽으로 향해 있었고 그의회색 옷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촛불이 된 내몸 아래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있는 물체가 있었다. 그런데 촛불이 된 내몸 아래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물체가 있었다. 불현듯 그것이 우주의 근원, 정신, 이성,영혼, 운명, 법칙, 그리고 진리라고 불리우는 모든 비 물질적인 요소들이한데 모여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어 그렇다 그것이바로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지니고 있는 불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마치 콜타르가 부글부글 끓고 있듯이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끈적끈적하다고 느껴지는 물질이 가득차 있는 곳이었다. 세상의 모든 비물질적 요소가 이곳에 모여 있고 현실 세계의 일은 이곳의 반영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온몸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곳이 이 지구의 상공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하에 있는 것인지이도 저도 아니라면 차원을 달리하는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정신의 에센스인 불성도 개의 불성과 함께 그곳에 한데 어울려 있었다.그렇다 그래서 조주 스님은 무라고 했던 것이다.

순간 억 하고 나는 소리를 지를뻔 했다. 뒷머리의 혈관이 팽창하여 펑하고 터지는 것 같았는데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내 혈관이 굵은 동앗줄만큼 굵어져 있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 안으로 굵은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콸콸 소리까지 들렸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고 안간힘을 썼지만 웬지 동아줄은더 이상 굵어 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불은에 감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불은으로 끝까지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싶었다. 그랬더니 내가 앉아 있는 부글부글 끓고 있던 불성들이 식어 가면서 마치 안개처럼 하얘져 가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도 시원하고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평온을 되찾았고 동아줄이 가늘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기쁨이요 희열의 순간이었다. 팽창할때의 느낌이 희열이었다면 수축할때의 느낌은 기쁨이 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여자들의 출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고 지켜야 할 계율도 엄청 많이 주시지 않았습니까?"

여자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자극적으로 들리면서 나는 불현듯 비구니스님들의 선방 풍습이며 대중 생활 등 절 생활은 어떨까 무척 궁금하게 여겨지면서 얼굴이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마동안 말이 없이 걸었고 수연 스님이 다시 조용하게 말했다.

"그런 번뇌 망상을 억지로 이기려하지 마세요. 혹시 방죽을 쌓으라는말을 들어보셨어요?"

"방죽을 쌓다니요?"

"저도 몇년전 어느 스님에게 들은 말인데 정진 할때 마음 속에 방죽을하나 커다랗게 만들어 놓으라는 야기죠. 번뇌며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대로 그대로 그 방죽에 차곡차곡 쌓여서 담아두면 나중에는 그 방죽이특 터지게 된다는 얘기죠"

순간 나는 머리에 청량한 기운이 한줄기 돌면서 온몸으로 느껴지는 희열감을 맛볼 수 있었다. `바로 이거다'하는 너무도 절실하면서도 유용한 가르침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수연 스님은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길에 감사함과 경이감이 가득차 있음을 느꼈는지 수줍은 듯 한마디 더 보탰다.

"말은 쉽지만, 사실은 나도 아직 그 방죽을 채우지 못했지만… 반쯤이나채웠을려나…"

나는 빨리 절로 올라가 그 가르침을 실행해 보고 싶었다. 아니 이미 그순간나는 그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내 머리속에는 어느새 벌써커다란 방죽이 쌓여져 있었고 걷고 있는 그 순간에도 벌써 물밀듯이 온갓망상 상념이 흘러 들어 오면서 바닥부터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갈림길 시외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면서 수연 스님은 `쓸데없이또 다른 장애를 지워 드리고 가는 것 아닌가 싶다'고 겸손해 했지만 그방죽을 쌓으라는 가르침은 얼마나 큰 도움이었는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뒤 나는 간간히 소식을 들었을 뿐 수연스님은 한번도 다시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속에 남아 있다.

내 방죽은 어느 순간까지도 거침없이 채워져 갔다. 온갖 강아지들이 제일먼저 물살에 휩쓸렸고 온갖 노스님들이 물에 빠졌고 그 사이사이 어린시절 뛰놀던 동리의 개구장이 동무들, 평생 웃을 줄 모르던 이모님, 술취한이모부, 그리고 사촌 형제들, 우리 토굴의 사형들, 우리 토굴 헛간의 침침한 곰팡이 냄새, 하다 못해 성철 스님의 웃음소리 까지 방죽으로 밀려오는물살에가라 앉아갔다. 가장 힘들게 떠 내려 보낸 것은 어렴풋한 4살때의기억으로 남아있는 어머니의 편린이었다.

나의 방죽 쌓아 물담기는 그동안 내가 얻어들은 참선의 지식으로는 분명외도임에 분명했다. 때문에 만행시간에 내 모습이 달라졌다고 공부에 진전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은근히 추어 주는 도반들에게도 내막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방죽쌓기는 너무도 신나고 있었기에 나의 모습이 활기차 있었던것은 틀림없었다.

참선에 있어 세가지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된다고 하여진다.

첫째는 대신근이다. 대신근이란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이며 화두에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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