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영희칼럼-마음 아파서 하고 싶지 않는 이야기

기자명 리영희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7년이라는 시간에 걸쳐서 1조원이 넘는 건설비를 들여 준공했다는 서울시지하철 7호선이, 개통한지 한 달도 안돼서 물 속에 잠겨버렸다고 온통 야단법석이다. 10여 킬로미터 길이의 전체 노선이, 높이 15미터 너비 30미터의거대한 하수도 구멍으로 돌변했다고 한다. 보통 한심한 일이 아니다.

나라 전체가 아우성일수 밖에 없는 것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내린 몇십밀리의 집중호우로 이 지경이 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한 달 열흘을 두고 내린 홍수라면 모른다. 그나마 기상예보의 정확한 경고가 있었다는데도 말이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곤죽이 된 진창물을 퍼내고, 기술자들이 수 십만달러씩 한다는 차량운행 전자자동장치들을 걸레로 닦고 있다. 땅 위에서는 수 십만의출퇴근 인파와 차량들이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다. 이 꼴을 하루에도 몇번씩텔레비전으로 보고있노라면, 이 나라의 민족성에 어떤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박정희대통령의 조작된 신화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한강의 기적'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 일어난 성수대교, 신행주대교,삼풍백화점이 붕괴하던 참사는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은그 위로 차가 다니는 팔당대교도, 몇 해전 거의 완공상태에서 불어닥친 폭풍으로 스팬(교각과 교각 사이의 콘크리트 연결강판) 하나가 바람에 불려떨어진 일이 있었다. `바람에 날려버린 다리'의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운것이다.

지금 당산대교는 지하철 운행을 멈추고 거의 새로 짓고 있다. 성수대교붕괴후에 다급해진 정부 당국이 일본기술진을 초대하여 긴급점검을 실시한결과 박정희식 `한강의 기적'으로 건설된 18개의 서울 한강교들 중에 안전기준을 채운 다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수도 서울 시내를관통하는 3^1 고가도로는 이미 누더기가 되어서 일년내내 길을 막고 보수공사중이다. 이 나라가 만들고 쌓고 세운 것치고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난 셈이다. IMF는 그 모든 것들의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한국인은 근대화(近代化)를 이룰 수 있는 제도적^정신적^도덕적 자질을 아직은 갖추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기 거북하지만 말이다.

이 슬픈 판단을 웅변으로 입증한 최근의 사태가 서울-부산간 초고속철도(TGV)건설계획이다. 이미 설계시의 예상비용을 몇 배나 되는 3조원을 들이고도 철로^철교^터널은 부실공사로 판정났는데, 그 위를 달리기 위해 설계^제작된 차량이 들어 오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WJE라는 건설감정전문회사가 실시한 긴급조사 결과, 한국의 TGV고속철도의 노반(路盤)공사는 그80퍼센트가 제대로의 설계도면도 없이 강행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처음 5조8천억원으로 예상한 TGV사업은 이제 그 5배에 가까운 이십몇조원으로도 대구까지 될까말까하다니 세계의 웃음거리도 보통 웃음거리가 아니다. 고속열차가 달릴 철로는 아직 30%도 안되고, 그나마 전체를 다시 짓거나 뜯어 고쳐야 할 판인데, 그 위를 달릴, 프랑스인들이 만든 미끈한 차량이 약속시간대로 한국의 항구에 도착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우리의 민족성의 병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길은 없는데 차가 먼저 들어 오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국적 코메디'가 아니고 뭣일까?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 서너시간이면 갈수있는 작은 나라에서 애당초 고속철도가 필요했는가?

우리 민족은 너무나 `경박'하지 않은가? 일을 급히 서둘러 서툴게 한다는졸속(拙速)의 차원이 아니라, 기본성향 자체가 경박하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이다. 자기 민족의 이 결점은 유럽국가들, 영국, 미국 … 등 나라를 보면 볼수록,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가슴 아프게 실감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한국인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깔보거나 얕잡아보기를 좋아하는 일본도 다르다. 최근에는 과거의 원한 때문에 무엇이든 일본이라면 `평가절하'하려던 잘못된 경향에 약간의 반성이 일어나고 있는 듯 보인다. `한강의 기적'의 알맹이가 드러난 반사적 결과이기는 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옛 성현들의 말에도 “허물을 알고 그것을 고치는 데는 늦음이 없다”고 했지 않았던가.

가령 일본인들이 건설한 `한강 인도교'를 보자. 노량진에서 용산까지 8백40미터 길이의 이 다리는 1916년 3월에 착공하여 1917년 10월에 1차 준공하였다. (총공사 완공은 1929년, 공사비 총계 3백70만원) 지금의 토목^건축^재료공학^공법에 비하면 어쩌면 `원시적'이었던 그때 지어진 이 다리는 해마다의 홍수로 인한 도괴의 위험을 이겨내고 70~80년을 끄떡없이 지금도 버티고 서있다.

6^25전쟁 폭격으로 세칸의 아아치가 파손되었지만, 원형대로 복구된 인도교는 그 아름다운 자태로도 해방후 이 민족이 건설한 16개의 다른 한강교들보다 뛰어나다. 일본인들은 식민지에서이지만 보기 좋으면서도 견고하고,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었다. 이 구조물은 대한민국 수도 현관입구에서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과 차량을 그 80세의 노구의 등에 실어서끄떡없이 소통시키고 있다. 열살도 안된 한국인의 다리들이 잇따라 무너지는 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우리는 또 일본인들이 건설한 건물이나 철도의터널이 붕괴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다. 서울역 본 건물, 한국은행 본관, 신세계백화점, 구 총독부인 헐린 중앙청건물 등등을 보라. 이 사실은 곰곰히 생각할수록 예사로운 일이 아님 알게 된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의 장점에서 배울줄 아는 국민이 돼야 겠다. 그러기에 서울 지하철 제7호선의 사태는 물난리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리영희/본지 고문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