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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용성스님 기억하는 성옥념 할머니

기자명 김민경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노래하는 재미로 법회 다녔지"

일제 치하에 불교계를 이끌어온 종교적 지도자이자 3 ·1 독립운동의 민족 대표 33인 중 불교를 대표하여 참여했던 용성스님(1864-1940)의 면모를 스님이 열반하신지 60년이 가까이 상세히 기억하는 할머니가 있다. 올해 나이 79세인 성옥념할머니(1920년 경신생庚申生, 시립중계노인복지관 301호).

성 할머니는 열살 전후 되던 시기부터 용성스님이 주석하셨던 봉익동 대각사에 다녔다. 어른들만 다니는 곳으로 알았던 절에 성옥념할머니는 용성스님 때문에 “노래하고 법문듣는 재미로 공일이면 법회에 열심히 다녔다”고 회고했다. 용성스님은 어린이 포교에 유난히 관심을 기울였던 분. 성 할머니는 악보로만 전해지던 용성스님이 작곡한 많은 찬불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주인공아 잠을 깨라 부처마다 도를 깨쳐 / 만반쾌락 자재한데 우리들은 무삼일로 / 삼계고해 빠져있어 벗어날줄 모르냐뇨”

할머니는 70년전 어린이법회에서 배웠던 〈권세가〉를 지금도 글자 한자안틀리고 부른다.

“법회 시작 할 적이면 늘 불렀지, 많이 배웠는데 지금은 서너곡만 기억하고 다 잊어버렸어. 용성스님이 극본을 쓴 연극도 했지. 용성스님이 지으신, 부모님 잘 모시는 법이랑 노래들이 적힌 책이 있었는데 윤비마마 관 속에 넣어드려서 지금은 없어.”

할머니는 “그 책이 있었으면 한 곡도 잊지 않고 다 부를 수 있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워 했다.

성옥념할머니는 매우 독특한 인생 역정을 걸었다. `요만한 꼬마'였을 때조선시대 마지막 정비인 윤비의 처소에 나인으로 들어갔다. 궁에 들어가 처음에는 속곳과 적삼을 짓는 침봉나인으로 지냈다. 당시 윤비를 모시던 고(高)상궁과 최(崔)상궁은 용성스님과 대각사의 최대 후원자였다. 학교가 쉬는 일요일이면 궁에 있던 많은 `아기 나인'이 두 상궁을 따라서 대각사엘다녔다.

“그때 대각사에는 상궁 몇분이랑 노인네들, 어른들이 절에 다녔지, 요즘처럼 젊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 부인선방도 있었는데 일요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떠들면 시끄럽다고 많이 야단했지. 그래도 스님이 하시는 일이라 대놓고는 뭐라 않데”

70년전 일을 어제일처럼 기억하는 할머니는 용성스님을 “말수 적고,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독립 운동이랑 대장경을 국문으로 번역하는 등 좋은 일을 참 많이 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나이가 어려 용성스님이 설하셨던 심지법문이나 경에 관한 법문은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인과설만은알아들었었다고 말했다. 언젠가 스님은 “독립운동하느라 감옥에 들어가 앉았더니 공부가 더 잘 되더라”는 법문도 하셨다.

할머니는 1940년 2월 24일 스님이 열반하시자 그후 40년 가까이 스님의기일이면 꼭 대각사에 가서 스님을 추모했다. 용성스님의 사리는 사리탑이완성 될 때까지 잠시 별궁 내 최상궁이 거처하는 곳의 다락에 모셔졌었는데하루는 사리가 방광(放光)하여 궁 내 모든 식구가 불이 난 줄 알고 난리를 피웠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할머니는 47세가 될 때까지 창덕궁과 낙선재에서 윤비와 지내다가 윤비가승하하자 한동안 서울 보문동 보문사에 몸을 의탁했다. 속가에는 남동생만남아있어 오갈 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부터 서울 노원구 중계 2동에 위치한 시립중계노인복지관에 입소하여 지내고 있다.

할머니는 팔순의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한 용모에 비교적 건강한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오랜 시간 염불 독경을 하고나면 종일방에서만 지낸다. 보호자가 함께하지 않으면 외출이 허락되지 않아서 바깥나들이를 거의 잊고 살고 있다.

할머니는 용성스님의 생애를 그린 음악극이 지난 `부처님 오신날'에 공연되어 화제가 되었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워하며 어린시절 꿈을 키웠던 대각사를 그리워했다.


김민경 기자
mkkl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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