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의 충절 기리기 위해 건립
문무왕은 삼국통일후 새로운 위협 세력으로 등장한 왜구들의 침략을 불력(佛力)으로 막고자 감은사를 짓다가 불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제31대 왕으로 등극한 신문왕은 부왕(父王)의 충절을 기리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감은사(感恩寺)'를 완성했다.
681년 완공된 감은사는 1960년과 1979~1980년에 걸친 발굴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쌍탑 가람식의 사찰 건립 방식을 취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삼국유사에는 `금당 계단을 파헤쳐 동쪽으로 향한 구멍을 냈으니 그것은 용(문무왕)이 들어와 머물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기록이 이때의 발굴을 통해 확인됐다.
감은사를 완공한 이듬해인 682년 5월 신문왕은 동해 호국룡이 된 문무왕과 삼십삼천의 아들로 태어난 김유신 장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보물인 신비로운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으며 감은사는 황룡사와 사천왕사와 함께 신라의 호국사찰로 명맥을 이어왔다.
그 뒤 감은사는 몽고란때와 임진왜란때 폐사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뿐 자세한 폐사 연대와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감은사에는 국내 최대규모의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1959년 12월과금년 4월 동서 양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당시 최고의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준 사리장엄구와 부처님 진신사리 수십여과가 발견되기도 했다.한편감은사는 신라 동해구 3대유적의 하나로 문무왕의 충절과 신문왕의 효행을기리기 위한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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